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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해결사’ 이두용 “평생 영화인으로 살고 싶다”

입력
2016.10.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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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용 감독은 “영화와 관련된 일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다.
이두용 감독은 “영화와 관련된 일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다.

8일 저녁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내 상영관에 원로배우 최불암과 양택조, ‘한국 추리문학의 대가’ 김성종 작가가 깜짝 등장했다. “아이구, 이게 얼마 만인가.” 옛 동료들을 발견한 이두용 감독(74)의 목소리가 들떴다. 네 사람은 부둥켜 안고 손을 맞잡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객석에 나란히 앉은 뒤에도 두런두런 정담이 끊이지 않았다. 곧 이어 스크린 위에 영화 ‘최후의 증인’(1980) 타이틀이 떠올랐다. 이 감독은 이 영화의 연출자이고, 최불암은 주연배우, 양택조는 후시녹음을 담당한 성우였다. 김 작가는 원작 소설을 썼다. 깜짝 손님들은 관객과의 대화(GV)에도 함께 참여해 영화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꽉 채워진 객석엔 20~30대 젊은 층과 외국인도 많았다.

“언제 우리가 또 이렇게 모이겠나 싶으니까 아주 감격스럽더라고. 관객 반응도 뜨거워서 기분 좋았어요.” 이틀 뒤인 10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마주한 이 감독은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에 초대돼 부산을 찾았다. ‘최후의 증인’ 외에도 “해외영화제의 존재를 몰랐던 시절”에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 부문 특별상을 수상한 ‘피막’(1980)과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된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 발차기 태권도 액션영화의 출발점인 ‘용호대련’(1974) 등 8편의 대표작이 상영된다.

이 감독은 ‘장르의 해결사’라 불린다. 1970년 배우 신성일 문희 주연의 ‘잃어버린 면사포’로 데뷔해 액션, 멜로, 사극, 사회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했다. 연출작은 총 60여편이다. 박찬욱 감독과 류승완 감독은 여러 기회를 통해 이 감독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전하곤 했다.

한국형 발차기 태권도 영화의 효시가 된 ‘용호대련’의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한국형 발차기 태권도 영화의 효시가 된 ‘용호대련’의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피막’은 ‘최후의 증인’ 검열 문제로 영화를 그만둘 결심까지 했던 이 감독이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편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이 감독에겐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피막’은 ‘최후의 증인’ 검열 문제로 영화를 그만둘 결심까지 했던 이 감독이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편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이 감독에겐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뽕’은 에로영화로 인식돼 있지만 우리네 여성들의 핍박 받는 삶을 들여다본 영화다. 이 감독은 “몇 년 전 해외에서 열린 회고전에선 ‘뽕’이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뽕’은 에로영화로 인식돼 있지만 우리네 여성들의 핍박 받는 삶을 들여다본 영화다. 이 감독은 “몇 년 전 해외에서 열린 회고전에선 ‘뽕’이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대표 장르는 역시 액션이다. 1970년대 한국영화 주류였던 신파성 멜로에서 벗어나 한국형 액션영화를 개척했다. “선이 악을 무찌르는 통쾌함이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하거든. 홍콩 쿵푸 영화와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 맞서 우리만의 색깔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태권도를 떠올렸어요.” “발차기로 악당 귀싸대기를 파바박 때리는” 액션을 원했던 이 감독은 재미동포 차리 셸(한용철)과 태권도 유단자들을 캐스팅해 ‘용호대련’을 만들었다. 이후 차리 셸은 이 감독의 영화 ‘돌아온 외다리’(1974)와 ‘분노의 왼발’(1974) 등에 연달아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액션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감독은 다시 진로를 변경했다. 액션영화는 3류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홍콩영화의 3분의1밖에 안 되는 돈으로 영화를 만들다 보니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매번 미완성이라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의 눈길은 하층민의 삶으로 향했다. 근대화에 의해 파괴되는 전통적 가치관을 다룬 ‘초분’(1977)을 시작으로 토속신앙을 소재로 그린 ‘피막’과 조선시대 여인의 참혹한 삶을 담은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나도향의 동명소설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뽕’(1985) 등 토속극과 사극을 제작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군사정권의 검열이 문제였다. 군인은 좋든 나쁘든 영화에서 다뤄선 안 되고 공무원에 비판적인 이야기도 금기시됐다. ‘최후의 증인’의 경우 개봉 당시 정부 검열과 제작사의 자체 편집으로 40여분 가량 잘려나갔다. 타살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를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과 권력자들의 타락을 그린 수사물이다. “기술시사회 때 누가 영화를 보고선 청와대에 투서를 했어요. ‘빨갱이 영화’라고. 검찰에 수시로 불려 다녔지. 이후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는데 처참한 모양새가 됐더라고. 영화 일을 그만둬야 하나 방황도 했죠. ‘이건 내 영화 아니다’라고 여겨서 뒤돌아 보지도 않았어.” 다행히 몇 년 전 프랑스문화원에서 158분짜리 원본이 발견돼 올해 부산에선 복원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죽었던 자식이 살아난 것 같아요. 그래서 나에겐 가장 애달픈 작품이지.”

영화‘최후의 증인’은 전국을 누비며 10개월간 촬영했다. 보통 하루 이틀이면 충분한 후시녹음도 무려 한 달이나 걸렸다. 당시 성우였던 양택조가 영화를 본 뒤 “이 영화는 동시녹음처럼 만들어야겠다”면서 추가 개런티도 받지 않고 한 달간 녹음했다고 한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영화‘최후의 증인’은 전국을 누비며 10개월간 촬영했다. 보통 하루 이틀이면 충분한 후시녹음도 무려 한 달이나 걸렸다. 당시 성우였던 양택조가 영화를 본 뒤 “이 영화는 동시녹음처럼 만들어야겠다”면서 추가 개런티도 받지 않고 한 달간 녹음했다고 한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이 감독이 장르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도 결코 잊지 않은 한 가지 원칙은 바로 ‘영화의 비판 기능’이다. 그가 만든 모든 영화엔 당대 사회를 우회적으로 파헤치는 날카로움이 녹아 있다. 사회 분위기가 누그러진 1990년엔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 문제를 다룬 ‘청송으로 가는 길’로 사회파 감독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방치하면 결국 사람이 죽게 됩니다. 영화도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존재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가 요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는 남북문제다. 정치와 이념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내고 싶다고 한다.

평생을 영화와 함께 살아온 거장은 한국영화계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요즘은 다양성의 시대 아닙니까. 또한 옛날 같은 제약이 없고 기술도 발전해 마음만 먹으면 뭐든 만들 수 있죠.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진 감독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만든 피터 잭슨 같은 사람이 한국영화계에도 필요해요. 거기에 한국영화의 희망이 있다고 봐요.”

부산=글 사진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젊은 시절 이두용 감독이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젊은 시절 이두용 감독이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이두용 감독이 7일 부산 해운대구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 행사에 참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두용 감독이 7일 부산 해운대구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 행사에 참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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