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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14 14:00

[애니칼럼] 원인 모를 경련... '번개'는 수두증을 앓고 있었다

등록 : 2018.02.14 14:00

이탈리안 코르소. 원어로는 카네 코르소 이탈리아노(Cane Corso Italiano). 게티이미지뱅크

낯선 분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연락하게 되었으며 강아지 상태에 대한 상담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강아지는 현재 유기견 보호소에서 보호중인 이탈리안 코르소 종 ‘번개(가명·3세 추정)’로 몸무게가 35kg이나 나가는 대형견이었다. 간헐적인 경련으로 특발성 간질(원인을 알 수 없는 간질) 진단을 받은 번개는 경련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고 현재 항경련제를 복용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증상은 완화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련과 후유증이 심해진다고 했다. 5분 정도 경련을 하는 동안 의식을 잃기 일쑤고, 경련에서 회복되는 기간도 며칠이 소요된다고 했다. 연락을 주신 분은 아이의 후원자로 기운 없이 지내는 아이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아프고 가엾어 치료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참으로 고맙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번개의 경련 당시 동영상(경련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고통스러워 보였고 소형견과 달리 대형견의 경련은 더욱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들었다)과 병원 입원 시 처방받은 내용 그리고 현재 복용 중인 약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후, 후원자에게 MRI 촬영을 통해 뇌 상태 확인이 필요함을 설득했다. 경련과 이후 회복 양상이 전형적인 특발성 간질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후원자가 흔쾌히 동의를 해서 MRI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다. 촬영은 무사히 진행되었고 아이도 마취에서 잘 깨어났다.  함께 촬영된 영상을 차분히 지켜보던 영상과장의 입에서 일순간 탄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번개가 왜 경련을 하면서 의식을 잃었는지 설명해주는 영상 소견이 확인된 것이다. 번개의 진단명은 수두증으로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수두증은 소형견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환으로 대형견에서는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뇌 안쪽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뇌실(Ventricle)로 뇌척수액(serebral spinal fluid)으로 채워져 있다. 이 부분이 확장되는 질환이 '수두증(뇌수종)'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람을 비롯한 포유동물의 뇌에는 뇌척수액으로 채워진 뇌실이라는 공간이 있다. 뇌척수액은 뇌실과 중추신경계를 순환하고 혈액으로 흡수된다. 그런데 뇌척수액의 생산·흡수 기전(機轉·메커니즘)에 불균형이 생기거나 뇌척수액이 순환하는 통로가 폐쇄돼, 뇌실 또는 두개강(머리뼈 안) 내에 뇌척수액이 과잉 축적되어 뇌실이 확장돼 주변 뇌 조직을 압박하고 뇌압이 상승할 수 있다. 이런 상태를 ‘수두증(뇌수종)’이라 한다 번개의 MRI 소견은 과도하게 축적된 뇌척수액으로 인해 뇌실이 심하게 확장돼 있을 뿐 아니라 확장된 뇌실로 인해 주변 뇌 조직이 압박을 받고 변성이 진행된 심각한 상황이었다. 

수두증은 보통 토이 푸들(왼쪽부터), 몰티즈, 포메라니안과 같은 소형견에서 발생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수두증은 흔히 소형견에서 발생하는 선천적인 문제이지만, 종양, 염증, 외상 등 후천적 문제로 발생하기도 한다. 치와와, 몰티즈, 포메라니안, 토이 푸들, 요크셔테리어, 잉글리쉬불독 등의 품종에서 자주 발생한다. 한 연구(Selby et al, 1979)결과에 따르면, 수두증 진단을 받은 개 564마리 중 53%가 생후 1년 이전에 임상 증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수두증이 있는 개들은 보통 머리가 크고 돔 형태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눈의 흰자위가 넓게 보이는 경우가많다. 또한 천문(두개골이 완전히 닫히지 않고 숨구멍이 뚫려있는 부분)이 열려 있는 경우도 많다. 시력 및 청력 손상, 지속적인 울부짖음, 과도한 흥분 또는 침울 상태, 간헐적인 발작, 보행 이상, 사경(목 부분이 뒤틀려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 사시, 선회운동(둘레를 빙빙 돌면서 움직이는 것), 동공 확장 등 다양한 신경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진단은 CT나 MRI 검사로 가능하다. 두개골의 천문이 열려있을 경우 초음파 검사로도 진단이 가능하다. 수두증은 치료 방법이 없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뇌실 확장 및 임상 증상의 정도에 따라 약물 요법 및 외과적 수술을 선택할 수 있다. 증상이 심하지 않을 경우 이뇨제, 뇌척수액 생성 억제제,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이 처방된다. 증상이 심하거나 내과적 치료에 반응을 하지 않을 경우 외과적 수술(단락술)이 지시된다.  단락술(뇌실복강단락술)은 뇌척수액을 뇌실에서 신체의 다른 공간으로 흘러내리게 해 흡수되도록 뇌실복강션트(뇌실복강션트는 뇌척수액의 흐름을 뇌실에서 소화기가 위치한 복강으로 바꿔주는 장치)를 이용해서 우회로를 만드는 수술이다. 수술을 했다고 해서 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과를 두고 호전될 수도 있고 변화가 없을 수도 있어서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번개는 증상이 심하고 뇌실 확장도 심해서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의료진은 소형견 수술 경험만 있고 대형견 수술의 경험이 없는 상황이라 선뜻 수술을 권하기 어려웠으나 후원자 분의 강고한 의지로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고, 몇 일 후에 번개의 수술을 진행할 예정이다. 심한 수두증은 수술을 해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션트 장착의 목적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번개가 건강한 생활을 오래오래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문재봉 수의사(이리온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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