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기자

등록 : 2018.05.16 17:09
수정 : 2018.05.16 20:20

‘대미외교 노장’ 김계관 등장은 매파 볼턴 견제용

등록 : 2018.05.16 17:09
수정 : 2018.05.16 20:20

6자 대표 등 대미협상 경험 풍부

대북 제재 주도한 볼턴과 ‘악연’

“볼턴 같은 자 때문에 우여곡절”

등판 담화문서 노골적 적대감

2007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다이빙궈 중국 외교부부장 주최 만찬에 참석한 김계관 북핵 6자회담 북한 측 수석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16일 강력한 대미 비판 담화를 발표한 김계관(75)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대미 외교의 야전사령관으로 꼽혔던 역전의 노장이다.북한이 2016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주북 쿠바대사관 방문에 동행한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김 제1부상을 등판시킨 건 북미회담의 기선을 잡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제1부상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때 북측 차석대표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1995년 북미 고위급회담 북측대표, 1999년 북미 미사일 회담 수석대표, 2000년 북미 테러 회담 대표 등을 맡으며 대미 외교의 간판으로 활동했다. 6자회담이 활발하게 가동되던 2004∼2008년에는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는 등 북핵ㆍ다자 외교 경험도 풍부하다. 그가 상대한 미국 측 협상 파트너는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대사, 제임스 켈리ㆍ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시기 북한이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북핵 협상도 중단되면서 대외 활동이 뜸했다가 북한이 지난해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를 19년 만에 부활시키고 김 제1부상을 위원으로 선출하며 대미 외교 복귀가 점쳐졌다.

김 제1부상이 한창 활동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안보 정책을 주도한 네오콘의 이론가가 바로 볼턴이다. 볼턴은 당시 국무부 군축ㆍ국제안보 담당 차관(2001~2005년)으로 근무하며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의혹을 집중 제기해 1994년 북미가 맺은 제네바 합의 파기를 이끌어냈다. 유엔 주재 미 대사(2005~2006년)로 근무할 땐 대북 경제 제재안을 주도했다. 미국 정부가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제재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 2,500만달러를 동결했을 때 당시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였던 김 제1부상은 “피가 마른다”고 했었다.

이 때문에 북한이 김 제1부상을 내세운 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정책을 지휘하는 볼턴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많다. 김 제1부상도 이날 담화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기간 조미(북미)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볼턴과 같은 자들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 됐던 과거사를 망각하고 사이비 ‘우국지사’들의 말을 따른다면 앞으로 조미수뇌회담을 비롯한 전반적인 조미관계 전망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명백하다”고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정지용 기자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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