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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막장 가족

입력
2016.11.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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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첫 구절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은 서로 비슷하지만 가족이 불행하게 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이 소설은 불행하고 문제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불륜과 돈 문제는 오블론스키 가족을 파괴하고 카레리나와 레빈의 결혼은 스캔들과 질투로 망가진다. 톨스토이는 이 유명한 첫 구절을 통해 우리가 가진 특유의 성격이나 불완전함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우회적으로 주장한다.

많은 소설가가 고장 난 가족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했다. 브론테 자매의 거의 모든 소설은 해체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셰익스피어도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을 통해 이러한 가족을 보여준다. J. D. 샐린저도 자살과 전쟁, 정신병으로 해체된 글라스 가족의 이야기 시리즈를 썼다. 가장 충격적인 해체가족은 ‘처녀 자살 소동’의 리스본 가족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 리스본 가족은 다섯 명의 딸이 있었는데 모두 10대에 자살을 시도한다. 판타지 소설에서도 이러한 가족 문제들은 자주 등장한다.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라니스터 가족은 서로를 음모하고 서로를 죽이고 근친상간까지 범한다. 이러한 막장 가족이 등장하는 소설 중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소설은 미국인 단편소설 작가 셜리 잭슨의 ‘우리는 항상 성에 살았다’였다. 오래된 맨션에 살고 있던 블랙우드 가족의 막내딸은 자신을 빨리 재우려 했다는 이유로 저녁 만찬에서 가족을 독살한다.

그러나 막장 가족을 다룬 한국 소설을 만나면서 내 마음속 순위가 바뀌었다. 막장 가족 소설 중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작품은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이다. 한국 문학에 등장하는 해체 가족은 세 가지 예로 나뉠 수 있다. 염상섭의 ‘삼대’는 일본 식민지시대의 해체 가족을 다룬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문제 있는 가족 이야기다. 이 두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슬프고 비극적이다. 대조적으로 ‘고령화 가족’은 정말 해학적이다. 그 가족은 늘 싸우고 서로에게 물건을 던진다. 그들은 매우 게으르고 안주하며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담배도 너무 많이 피운다. 그리고 그들은 이성을 고르는 눈도 형편없다. 소설은 48세의 전직 영화감독 오씨가 그의 어머니와 같이 살려고 엄마의 아파트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의 커리어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가 감독한 영화들은 졸작이었고 회사는 망한다. 오 감독은 망가진 상태였다. “나는 벼랑 끝으로 몰렸어. 한발 짝도 앞으로 내밀 수 없이 좁은 곳에.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아… 어른들은 나를 창피해하고 주변 친구들은 날 멸시해. 날 가장 먼저 버린 건 내 아내였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의 형은 이미 감옥살이를 한 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오 감독이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남편에게 쫓겨난 그의 여동생과 버릇없는 15세 딸도 그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중년의 나이의 세 남매가 어머니의 작은 아파트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뜻밖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오 씨 가족은 과거 내 가족의 불완전했던 일화를 생각나게 해준다. 나와 누나와 여동생이 모두 독립했다가 개인적인 문제들로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살았던 때가 있었다. 어른이 된 후 다시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우리는 엄청나게 싸웠다. 그리고 술도 많이 마셨다. 담배도 많이 피워댔다. 그리고 줄줄이 연애도 실패했었다. 오 씨 가족은 우리 자신의 취약점과 단점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적인 면들도 떠오르게 한다.

존 레넌은 ‘인생은 계획을 만드는데 몰두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일어나버리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보다 낫고 좋은 것을 꿈꾸는 사이에 막장 가족들 이야기처럼 오늘도 불완전한 삶이 우리 앞에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배리 웰시 서울북앤컬쳐클럽 주최자ㆍ동국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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