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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낚싯배 함께 타야지…” 물거품 된 부자선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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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낚싯배 함께 타야지…” 물거품 된 부자선장의 꿈

입력
2017.12.04 17:4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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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바라 본 실종 선장 父子

영흥도 토박이… 40여년 승선

‘월급 선장’으로 일하다

“아들이 낚싯배 주문했다” 웃음

아들은 다른 배 사무장 근무

“아버지만 보고 주문한 배…” 눈시울

지난 5월 선창1호를 몰고 바다로 향하고 있는 오모 선장. 독자 김도헌씨 제공
지난 5월 선창1호를 몰고 바다로 향하고 있는 오모 선장. 독자 김도헌씨 제공

인천 옹진군 영흥도 주민 대다수는 3일 이곳 앞바다에서 벌어진 낚싯배 전복 사고로 실종된 선창1호 선장 오모(70)씨를 그저 투박하고 조용한 사람으로만 기억한다. “영흥도 토박이로 40여년 전부터 어선을 탔던 그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게 이웃들의 공통된 얘기다. 인근 식당 주인 박모(58)씨는 4일 “오씨는 이 동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베테랑 선장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만 성실히 해 온 사람”이라고 했다.

몇몇 주민은 그러나 말수 적던 그의 최근 몇 달 새 모습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고 했다. 통 자기 자랑 않던 그가 친한 지인들에게 은근슬쩍 “아들이 낚싯배를 주문했다”는 자랑을 흘리며 웃어 보였다는 것. 다른 낚싯배 사무장을 맡고 있는 오씨 의붓아들 장모(43)씨가 지난달 정부 보증 아래 3억원의 귀어(歸漁)자금 대출을 받아 충남 모처 조선사업장에 9.77톤 낚싯배를 주문했는데, 오씨는 “이 배만 뜨면 아들과 한 배를 타면서 노하우를 전하고 은퇴할 것”이라며 배가 완성될 내년 3월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주민들 얘기다.

이런 오씨 모습은 다른 어민들에게도 활력이 됐다. 동료 선장 이모(48)씨는 “오씨가 반평생 자기 배를 갖지 못한 채 매달 300만원 남짓을 받는 월급선장으로 일해 온 걸로 안다”며 “새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따르겠다는 장씨와,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하겠다는 오씨 모습은 부럽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장씨는 아버지가 선장인 선창1호가 아닌 다른 배 사무장으로 지내면서 열심히 낚싯배 운항을 배우고 있었다”면서 “쉬운 길을 두고 힘든 길을 택한 장씨도 든든했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꿈꾸고, 이웃이 응원했던 ‘부자(父子) 선장의 꿈’은 오씨의 실종으로 일순간 물거품이 됐다. 두 사람을 잘 안다는 한 선장은 “아버지를 집어삼킨 바다를 어찌 보며 살겠냐”고 속상해했다.

장씨는 사고 이틀째인 이날 오전 7시30분쯤, 털모자를 눌러쓰고 묵묵히 배에 올랐다. 아버지를 포함한 두 명의 실종자 수색을 위해서다. 기상조건 악화로 오후 1시30분쯤 귀항한 그의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새 배를 기다렸냐”고 묻자 그는 오랜 시간 뜸 들인 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만 바라보고 주문한 선박인데, 이제 어쩌죠.” 연신 담배를 피던 그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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