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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는 선풍기에도 ‘숨겨진 날개’는 있다

입력
2018.07.21 10:00
수정
2018.07.21 14: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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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형 기둥 속에 숨어 있는

날개ㆍ모터로 공기 빨아들인 후

위쪽 고리 내부로 공기 밀어올려

고리는 비행기 날개 같이

‘베르누이의 원리’가 적용

고리 안팎 공기가 만나

빠른 속도의 바람 만들어내

다이슨의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이 날개 없는 선풍기 고리의 단면에서 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가리키고 있다. 다이슨 제공
다이슨의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이 날개 없는 선풍기 고리의 단면에서 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가리키고 있다. 다이슨 제공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선풍기는 무더위와 싸워야 하는 한여름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인류는 기원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바람을 만들어 더위와 싸워왔는데 전기를 사용한 최초의 선풍기는 1882년 미국의 엔지니어 스카일러 휠러가 22세에 발명한 개인용 양날 선풍기로 기록되고 있다. 전기 엘리베이터를 발명하기도 한 그는 모터에 두 개의 날개를 달아 바람을 일으켰는데 첫 발명품은 회전하는 날 주위에 보호 철망이 없어 꽤 위험한 제품이었다.

선풍기는 보호망이 씌워진 뒤에도 늘 안전사고의 위험이 뒤따랐다. 아이들이 호기심에 손가락을 넣어보는 등 선풍기와 관련한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선풍기가 발명된 지 130년이 지난 요즘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영국 가전회사 다이슨이 내놓은 날개 없는 선풍기가 비싼 가격에도 적잖이 팔린 이유 가운데 하나다.

2009년 첫선을 보인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 ‘다이슨 쿨’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혁신 상품이었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날개가 없어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도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었고, 날개에 덕지덕지 붙은 먼지를 청소하는 데 불편함을 느꼈던 소비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얻었다.

날개 없는 선풍기 하면 모두 다이슨을 떠올리지만 같은 원리를 적용한 아이디어는 그보다 약 30년 전인 1981년 일본 도시바가 먼저 완성해 특허까지 받았다. 다이슨이 일본 회사의 아이디어를 차용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구조와 외관이 흡사하다. 하지만 도시바의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 출시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특허도 20년이 지나면서 소멸해다. 그래도 문헌상으로는 도시바가 날개 없는 선풍기의 ‘원조’다.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손 건조기를 개발하던 중 노즐에서 나오는 공기가 어떻게 주변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지 관찰하다가 날개 없는 선풍기의 가능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비행기 날개처럼 볼록한 곡면 위를 이동하는 공기가 주변 공기를 끌어들이는 것을 발견하고 엔지니어, 과학자, 물리학자들과 팀을 이뤄 4년간 연구에 매달린 끝에 2009년 날개 없는 선풍기를 출시했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겉으로 보면 원통형 기둥과 고리로 이뤄진 간단한 구조여서 어떻게 바람이 만들어지는지 추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는 날개 없는 선풍기라는 표현 자체가 일종의 트릭이다. 날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기둥 역할을 하는 스탠드에 선풍기의 날개 역할을 하는 나선형 모양의 팬이 숨어 있다. 국내 ‘선풍기 명가’ 신일산업의 강찬모 연구원은 “모터와 날개가 숨어서 안 보일 뿐 날개 없는 선풍기도 모터와 날개로 공기를 이동시킨다”고 설명했다.

겉모습은 완전히 딴판이지만 이 선풍기는 여러모로 비행기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한다. 비행기의 제트엔진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 다량의 공기를 팬으로 흡입하듯 날개 없는 선풍기도 스탠드 안에 숨어 있는 팬과 모터로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래서 스탠드에는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촘촘한 구멍이 뚫려 있다.

스탠드 안의 날개는 이렇게 흡입한 공기를 위쪽 둥근 고리 내부로 밀어 올린다. 다이슨 제품의 경우 일반 선풍기가 날개를 통해 몸체 뒤쪽에서 빨아들이는 공기량의 3배에 달하는 초당 27ℓ가량을 빨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면이 속이 빈 비행기 날개 모양으로 생긴 고리 내부의 좁은 공간으로 밀려 들어간 공기는 시속 90㎞로 유속이 빨라진다. 수도 호스의 구멍을 좁게 만들수록 물이 빠른 속도로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핵심 기술은 ‘베르누이의 원리’를 응용한 고리에 있다. 제임스 다이슨이 날개 없는 선풍기의 가능성을 찾은 것도 이 원리와 관련이 있다. 베르누이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공기나 물 같은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고, 속력이 감소하면 압력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베르누이의 원리를 적용한 대표적인 예가 비행기의 날개다. 날개의 단면을 보면 아래쪽은 평평하고 위쪽은 볼록한 곡선이다.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이동하면 날개 앞 부분의 공기가 날개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갈리며 날개 뒤로 움직인다. 이때 평평한 아래쪽을 이동하는 공기는 유속이 느려 압력이 높아지고 곡선으로 된 날개 위쪽은 유속이 빨라져 압력이 낮아진다. 공기는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중력과 반대 방향인 양력(揚力ㆍ유체 속을 운동하는 물체에 운동 방향과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 커지면서 비행기가 공중에 뜨게 된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고리도 단면이 비행기의 날개와 비슷하다. 고리 바깥 면은 평평하고 고리 안쪽 면은 볼록하다. 바람이 나오는 출구인 고리 안쪽 면의 작은 틈은 공기가 곡선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게 해준다. 강 연구원은 “고리 안쪽 면의 틈에서 배출된 빠른 속도의 공기로 인해 고리 안쪽의 압력이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압력이 높은 주변의 공기가 고리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고리 안쪽 틈에서 나오는 빠른 속도의 공기와 함께 바람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다이슨 제품은 이 과정에서 고리를 통과하는 공기의 양이 기둥으로 빨려 들어간 공기보다 15배 정도 증가한다. 그래서 다이슨은 이 같은 기술에 공기를 증폭한다는 뜻의 ‘에어 멀티플라이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람을 만드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날개 있는 선풍기와 날개 없는 선풍기의 바람은 성질이 다르다. 날개 있는 선풍기는 뒷부분의 공기를 날개로 잘라서 앞으로 밀어주는 반면 날개 없는 선풍기는 공기의 흐름을 끊지 않고 이동시켜 훨씬 자연스러운 바람을 만들어낸다. 날개 있는 선풍기 앞에서 소리를 내면 떨리는 것처럼 들리는 것도 공기의 흐름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이처럼 과학을 응용한 단순한 구조여서 모터와 팬, 기둥, 좁은 틈이 있는 고리만 있으면 직접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날개 없는 선풍기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고성능 모터를 쓰는 것이다. 강 연구원은 “날개 없는 선풍기나 서큘레이터를 제작할 때는 일반 모터보다 성능이 좋은 고효율 BLDC(Brushless DC) 모터를 사용해 모터 소음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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