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순지
기자

등록 : 2018.05.20 11:00
수정 : 2018.05.20 15:07

[토끼랑 산다] 토끼도 ‘광견병 주사’를 맞는다

<6> 동물병원이 어색했던 반려인과 토끼

등록 : 2018.05.20 11:00
수정 : 2018.05.20 15:07

주사기와 함께 있는 랄라. 랄라는 주사를 무서워해서 주사기를 보면 바로 도망간다. 이순지 기자

2014년 4월 나는 대학 입학 후 8년 동안 살던 서울을 떠나 고향 울산으로 내려가야 했다.그 동안 서울 이곳 저곳을 떠돌았지만 항상 8평 남짓한 작은 원룸에 살았던 터라 고향 집으로 부칠 짐은 별로 없었다.

다만 걱정이 된 건 토끼 랄라였다. 2013년 4월 랄라를 입양한 후 한번도 함께 멀리 떠나본 적이 없다. 토끼는 시력이 좋지 않은 대신 귀가 밝다. 게다가 스트레스에도 약해 소음이 심한 버스, 지하철 등 교통 수단 이용을 싫어한다. 그래서 병원 갈 때 빼고는 랄라를 데리고 멀리 떠난 적이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해서 랄라를 홀로 서울에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고향으로 함께 내려갈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KTX를 이용할 때는 가방 등에 넣어 보이지 않도록 하고 광견병 예방접종 등 필요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코레일 홈페이지

머리를 싸매다 내린 결론은 옆자리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빨리 이동할 수 있는 KTX 특실이었다. 당시 특실 가격은 7만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비쌌지만 그래도 2시간 20분만 고생하면 고향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다. 표를 예매하고 KTX(레츠코레일) 사이트를 유심히 보니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고객 에티켓’이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반려동물은 가방 등에 넣어 보이지 않도록 하고 광견병 예방접종 등 필요한 예방접종을 한 경우 여행이 가능합니다.’ 나는 ‘광견병’이라는 단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토끼도 광견병 주사를 맞아야 하나?”

2014년 4월 KTX를 타고 이동 중인 토끼 랄라의 모습. 이순지 기자

울산 고향 집에서 종이를 뜯으며 사고를 친 랄라. 이순지 기자

그래서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 토끼 진료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동물병원에 갔다. 대부분의 동물병원은 강아지, 고양이 위주로 진료를 하는 데 경우에 따라서는 토끼 진료를 해본 적 없는 수의사들도 있다. 랄라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무작정 찾아갔다가 몇 차례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토끼 진료가 가능한지 반드시 미리 확인한다.

병원에 도착하니 수의사는 “토끼도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랄라에게 주사를 놔줬다. 비용은 2만 5,000원.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다기에 그러긴 했는데, 정작 광견병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진 못했다. 당시 나는 뭐하나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던 어리숙한 토끼 엄마였다. 광견병 예방 주사는 강아지만 맞아야 하는 줄 알았던 나는 엉겁결에 예방 주사를 랄라에게 맞히고 KTX를 탔던 기억이 있다.

“토끼가 왜 광견병 주사를 맞아요?”

광견병은 광견병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동물에게 사람이 물렸을 때 생기는 질환을 말한다. 급성 뇌척수염의 형태로 나타나며, 열이 심하게 나고 공격성이 증가한다. 개에게 물렸을 때만 걸리는 질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야생 너구리, 여우 등의 동물들도 광견병 바이러스를 갖고 있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토끼도 예외가 아니다. 인덕원 종합 동물병원의 임재규 수의사는 “토끼는 광견병 바이러스에 높은 감수성을 지닌다”며 “의무적으로 토끼는 매년 1회 광견병 예방 접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수의사에 따르면 광견병은 광견병에 걸린 동물에게 물렸을 때 감염되는데 요즘은 예방을 잘해 광견병에 걸린 동물을 밖에서 만날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산책을 즐기는 토끼라면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조심하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광견병 예방 접종이다.

랄라의 경우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을 때는 잠깐 고통스러워했지만 그 뒤에는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집에서 평온하게 지냈다. 토끼도 성격이 제각각이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랄라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의사에게 대들 정도로 씩씩한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랄라는 병원 가는 것을 싫어하긴 해도 병원에서는 크게 힘들어하진 않는다.

병원이 낯선 토끼 반려인에게… “사실 저도 그래요”

웹툰 '나는 토끼를 키운다' 7화 동물병원을가다(하)에는 작가 해피제이(Happy_J)가 반려 토끼 모키와 함께 병원을 찾아 접종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체 작품은 네이버 도전만화, 브런치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작가 해피제이 제공

랄라는 씩씩했지만 토끼 엄마인 나는 그렇지 못했다. 동물병원 가는 게 낯설었다. 랄라를 키우기 전까진 반려동물을 접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랄라를 데려온 지 3개월쯤 됐을 때 토끼를 키우는 지인으로부터 “토끼도 예방 접종을 해야 하고,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토끼 진료로 유명한 동물 병원을 소개받아 랄라와 함께 예방 접종을 하러 갔다.

랄라는 토끼 바이러스성 출혈열(Viral Heamorrhagic Disease, VHD), 내외부 기생충, 광견병에 대한 예방 접종을 받았다. 임재규 수의사에 따르면 VHD는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20만 마리가 넘는 앙고라 토끼가 폐사했다고 한다. 임 수의사는 “토끼 바이러스성 출혈열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예방접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내외부 기생충은 털 진드기나 옴 진드기를 말하는데 약만 바르면 금방 치료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예방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앞서 설명했던 광견병도 꼭 맞아야 하는 예방 접종 목록에 들어가 있다.

토끼에게 필요한 예방접종은 이 정도였지만 예방접종 자체보다 나에게는 동물병원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정말 믿을 수 있는 병원일까?’ 등 걱정이 앞섰다. 그때 도움이 됐던 것이 토끼 반려인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이 곳에선 진료비, 수의사 친절도 등 동물 병원에 대한 후기와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동물병원이 낯선 토끼 엄마들이라면 일단 온라인 커뮤니티들의 병원 후기를 참고하길 권한다. 그리고 진료비가 부담된다면 꼭 병원에 전화를 해보고 대략의 비용도 알아보자. 그러면 조금은 마음 편하게 병원에 갈 수 있다.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랄라가 이동 가방에 들어가서 꼼짝하지 않는다. 이순지 기자

무서워도 ‘꼭’ 병원에 가야 하는 이유

병원에 다녀온 후 삐친 랄라. 눈빛이 매섭다. 이순지 기자

6년 차 토끼 엄마라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동물병원이 무서울 때가 있다. 하지만 토끼를 가족으로 삼았다면 동물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토끼는 성격상 아픈 내색을 하지 않는다. 밥을 먹지 않는다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이미 많이 아프다는 얘기다.

이런 상태에서 병원에 가게 되면 토끼와 반려인이 느끼는 고통은 생각보다 크다. 2014년 8월쯤 랄라가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잘 걷지 못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상태가 심각했다. 바로 랄라를 안고 동물병원에 갔는데 골반 뼈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 당시 2살로 항상 기력이 넘쳤던 랄라는 1m 높이의 자신의 집 위를 왔다 갔다 하다 다친 것 같다. 다행히 건강했던 랄라(당시 사람 나이로 20대)는 약 몇 봉지를 먹고 뼈가 붙어 다시 껑충 뛰어다닐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랄라가 영원히 잘 걷지 못할까봐 몹시 걱정했었다.

랄라는 이제 5살이 넘어 고령 토끼가 됐다. 관절염 등 각종 질환이 생길 수 있는 나이다. 고령 토끼는 3,4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정도는 혈액 검사 등을 받아 병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토끼가 병원을 무서워한다고 해서 반려인까지 무서워하면 안 된다. 토끼와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반려인이 먼저 병원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고통을 잘 표현하지 않는 토끼에게 반려인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은 정기적인 병원 행이다.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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