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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백패스에 야유를 퍼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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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백패스에 야유를 퍼부어라

입력
2018.05.0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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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전북 현대 선수들이 지난달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 삼성을 누른 뒤 홈 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축구 전북 현대 선수들이 지난달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 삼성을 누른 뒤 홈 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최근 만난 축구계 원로는 프로축구 K리그의 인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안타깝다며 “이젠 관중의 적극적인 야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승부에만 집착하지 말고 게임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선수들의 행동에 따끔하게 질책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 등 유럽의 빅리그 관중들은 선수들이 열심히 뛰지 않을 때 야유를 퍼붓는다. 특히 괜한 백패스로 시간을 허비할 때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라도 여지없이 ‘우~우~’를 외쳐댄다. 그는 “선수들에겐 감독의 질책만큼이나 팬들의 비난도 두렵다. 팬들의 야유가 느슨한 플레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7시즌 우승팀 전북 현대는 올해도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시즌 22승 9무 7패로 클래식(1부 리그)에서 유일하게 20승 이상을 챙겼다. 공격력이 압도적인 전북은 가장 많이 득점(73점) 했고 가장 적게 실점(35골)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낸 ‘2017 K리그 기술보고서’에 따르면 전북은 경기의 지배력을 말한다는 점유율 부문에서 의외로 7위에 그쳤다. 점유율 1위는 FC서울이다. 하지만 전북의 전체 점유시간 중 61%는 상대 진영이었다. 자기 진영보다 상대 진영에서 더 많은 시간 공을 다뤘다는 것. 골대 근접거리인 상대 진영 3분의 1 지점에서의 점유율(39%)과 페널티박스 안 점유율(16%)도 리그 최고를 기록했다.

반면 점유율 1위 FC서울은 상대 골문에 가까워질수록 점유시간이 짧아졌다. 수비 진영에서 신중히 볼을 돌렸지만 정작 슈팅 가능한 지점까지 원활하게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올 시즌 ‘이기려는’ 전북은 여전히 공격적이고, ‘지지 않으려는’ FC서울은 수동적이다. 현재 전북은 9승 1패로 1위를 독주하고, FC서울은 2승 4무 4패로 9위로 떨어졌다. 안타깝게도 엊그제 황선홍 FC서울 감독은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뒤에서 마냥 공을 돌리는 건 국가대표팀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러시아월드컵 예선을 치르면서 고질적인 낮은 골 결정력을 드러냈다. 한국의 정확하지 못한 슛의 원인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함께 우리의 느슨한 축구 스타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만 오래 가지고 있을 뿐 공격속도가 떨어지니 완벽한 찬스를 만들기 힘들어지고 결국 중거리 슛 남발로 이어진 것이다.

불필요한 횡패스와 백패스의 남발은 일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살짝 부딪혔는데도 일단 드러눕기부터 시작하는 선수들처럼, 작은 꼬투리를 잡아 공연히 트집만 부리는 이들을 우린 정치판을 비롯 주변에서 숱하게 봐왔다.

월드컵 역전 결승골 이상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벌어졌다. 이날 남북 정상은 기대 이상의 것들을 쏟아냈고, 봄빛 보다 밝은 미래를 열었다. 인상 깊었던 건 남북 모두 향후 전개에서도 빠른 속도를 강조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리가 11년간 못한 것을 100여일 만에 줄기차게 달려왔다”며 “‘만리마 속도전’을 통일의 속도로 삼자”고 제안했다. 배석한 임종석 비서실장은 “살얼음판을 걸을 때 빠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고 거들었다. 분단에 기댄 나라 안팎 기득권 세력들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속도를 높이자는 주문이기도 하다. 뭐든 늘어지면 불신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가야 할 길이 멀다. 두 정상의 약속은 이제 현실에서 증명돼야 한다. 비무장지대가 평화지대가 되고, 서해가 평화와 번영의 바다가 되기 위해선 숱한 걸림돌과 난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축구의 지루한 백패스를 막기 위해 관중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면, 모처럼의 남북 화해로 가는 길 퇴행을 고집하는 이들에겐 국민의 엄중한 경고가 필요할 것이다.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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