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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헌의 구례일기- "자네 왜 힘든지 아는가? 힘이 들어가서 힘든 겨"

입력
2016.05.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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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에 모판넣기 작업을 끝내고 흙탕물에 손을 씻고 있다. 희한하게도 손이 많이 깨끗해진다. 뒤이어 옷에 손을 문질러 마무리 한다.
못자리에 모판넣기 작업을 끝내고 흙탕물에 손을 씻고 있다. 희한하게도 손이 많이 깨끗해진다. 뒤이어 옷에 손을 문질러 마무리 한다.

“못자리 앞에 비닐하우스 아줌마한테 전화가 왔는디……” 영상통화인 것처럼 오봉댁어머님의 걱정스런 표정이 보였다. 모판을 덮어놓은 부직포가 바람에 홀라당 벗겨졌다는 말씀이었다. 나락농사 5년째, 독립이 두려운 캥거루마냥 올해 역시 이장님의 도움으로 함께 씨나락을 뿌렸다. 논 한 켠에 모판을 내놓았지만 아직 여린 싹이라 밤바람이나 늦서리에 다칠 까봐 하얀 부직포를 덮어줬는데 바람이 이걸 헤집어 놓은 것이다.

논에 도착하니 난장판이었다. 급한 김에 신발 신은 채 논으로 튀어 들어갔다. 저만치 모판 가운데로 밀린 부직포를 끄집어 당겨서 펴야 한다. 배달하는 짬뽕 그릇에 비닐 랩 덮듯이 빤빤하고 팽팽해야 좋다. 쉽지 않았다. 내 팔은 뭘 하려 해도 항상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짧다. 어렵게 나뭇가지를 걸어 겨우 움켜쥔 부직포를 당겼지만 요트 돛처럼 불룩해진 부직포는 나를 가지고 놀았다. 이쪽을 당기면 저쪽이 터지고, 앞쪽을 여미면 뒤쪽이 펄럭였다. 상대도 없고 관중도 없는 진흙탕 레슬링을 30분만에 끝냈다. 갑자기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더니 밤하늘이 노래졌다. 탈진이 왔다. 이번 봄에만 두 번째 탈진이다.

못자리에 모판 넣기 작업을 끝내고 부직포를 덮고 있다. 논에서는 걷는 것 만도 힘든 일이다.
못자리에 모판 넣기 작업을 끝내고 부직포를 덮고 있다. 논에서는 걷는 것 만도 힘든 일이다.

힘이라면 자신 있었다. 잠시 말라깽이였던 어린 시절에도 싸움은 누구에게 지지 않았고, 살집이 뒷받침 된 후에는 더욱더 승승장구였다. 100킬로그램 넘는 체구의 술 취한 동료를 지하 술집에서 업어 올리는 착한 일도 해봤고, 아이 학교 운동회에서 학부형 팔씨름 대회에서 쌀가마니도 받아 봤다. 팔씨름 2연패를 달성한 후, 주최측의 출전 금지 조치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1등만 미워하는 세상을 뒤로 하고 재야에 묻혀 지내고 있다. 무식한 놈이 힘 자랑 한다고 하지만 무식하고 힘도 없는 사람은 얼마나 살기 힘들겠나 싶어 맘이 짠하다.

어쨌든 그런 내가 매년 두어 번씩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게 되는 일을 당하니 참 당황스럽다. 그 며칠 전에도 그랬다. 논에 물을 받으려면 논두렁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 두더지들이 하도 구멍을 내서 논바닥에 물이 남아날 일이 없어 비닐을 댄 적이 있다. 이 비닐을 걷어내고 논두렁 조성기라는 기계를 이용해 예쁘고 찰지게 다시 만들기로 했다. ‘그까이 거 파묻고 덮기도 했는데 쭉 잡아 댕기면 술술 나오겠지’ 했던 짐작은 오산이었다. 비닐 한 쪽을 얼마나 깊고 단단하게 묻었는지 대강 잡아당기면 늘어나다가 툭 끊어지고는 그 끝이 땅 속으로 쏙 숨어들어갔다. ‘내 논에 비닐 한 자락도 안 남겨두리라’는 의지로 두더지처럼 파고 들어가 다시 끝을 잡아내서 당겼다.

그러기를 2시간 여, 작은 논 100미터짜리를 끝내고 큰 논으로 가서 작업하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한때 27인치를 자랑하던 허벅지가 23까지 가늘어졌으니 나도 예전 몸이 아니란 걸 인정해야 한다. 물기가 남은 논바닥은 시원했고 자세도 오히려 편했다. 작업을 이어가려는데 손가락 느낌이 이상했다. 빤히 내려다보이는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힘이 손가락까지 전달되지 않았고 그냥 남의 손가락 보는 느낌이었다. 유체이탈한 기분으로 팔다리를 살펴보다가 정신줄을 잡았다. 겨우 기어 나와 트럭 짐칸에 누웠다. 노고단에서 산성봉으로 몰려가는 회색 구름들은 무겁지만 날렵했다. ‘허어, 이 정도 일에 자빠지다니’ 리즈 시절이 그리웠다. 하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니 티도 못 낸다.

“젊었을 땐 저 아래 한밭꼬리에서 밭 매다가도 산성봉 중턱 뽕나무밭에 누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이면 뽕잎 따갈까 봐 한 달음에 달려갔네. 근디 이제는 우리집 마당 질러가기도 숨이 차니……” 며칠 전, 마당에서 모판에 씨나락을 뿌리던 이장님이 뜰방에 걸터 앉으며 말씀하셨다. 예전엔 자랑 섞인 말씀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큰 애기 국민핵교 들어가기 전에 저 오봉에서 오리목나무 백 여 개를 짊어지고 와서 이 집 서까래를 얹은 사램이여 내가.” 요즘은 ‘왕년’ 말씀보다 힘들다는 한탄의 비율이 조금씩 커진다.

사모님인 오봉댁어머님도 예전 같지 않으신가 보다. 댁에 들렀을 때 부엌에 안 계시면 무조건 밭에 계신 거였는데 요즘은 예상이 빗나갈 때가 많다. 병원이나 한의원 다니시는 횟수가 늘어서 그렇다. “1년 농사 져서 5년 묵으믄 얼마나 좋겄소, 안 그러요 원샌?” 요맘때 하시는 어머님의 봄철 소원이다. 작년까지는 “3년 묵으믄”이었는데 올해는 ‘5년’으로 늘었다. 그만큼 더 힘드시다는 거다.

이장님댁 가족들이 마당에서 모판에 씨나락을 뿌리는 작업을 하던 중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내내 밝은 분위기에서 움직인다. 짜증내면서는 못할 일이다.
이장님댁 가족들이 마당에서 모판에 씨나락을 뿌리는 작업을 하던 중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내내 밝은 분위기에서 움직인다. 짜증내면서는 못할 일이다.

논 일을 마무리하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장씨아저씨가 민소매 내의 바람으로 농막에 들어오셨다. “아이구 죽겄네. 물 한 컵 주라” ‘칠순 청년’ 아저씨의 복근은 모르겠지만 번들번들한 피부색은 확실히 쵸콜릿이다. “무슨 일 하셨길래 땀을 그렇게 흘리세요?” 물을 조금 많다 싶게 드렸는데 입가로 조금 흘린 것 빼고는 다 부어 넣으셨다. “고추 좀 심는다고 왜 이렇게 힘들다냐. 자네는 머 했는가?” 논두렁 작업한 말씀을 드리고 힘이 다 빠졌다고 하니까 물 한 잔 더 달라고 하시며 말씀하셨다. “자네 힘든 게 왜 힘든지 아는가?” 뭔 말씀을 하시려는 지 잘 파악하고 최선의 대꾸를 해 보려 하지만 늘상 잘 안 된다. “힘이 들어가서 힘든 겨.” 뭔 말씀을 하시려고……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일을 하믄 괭이질도 힘들고 낫질도 힘들어. 알겠는가? 기운을 빼란 말이여.” 내가 이해력이 좋아서 그렇지, 그렇게 짤막한 말씀을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오래된 얘기지만 아내가 아이 선재를 가졌을 때 산부인과에서 진행하는 출산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흔히 TV에서 보는 커플 체조 같은 것도 하고, 호흡법도 배웠다. 수 차례 진행된 교육의 요점은 “힘 빼라” 였다. 힘을 빼야 통증도 덜하고 오히려 더 큰 힘도 발휘할 수 있다는 거다. 처음엔 만들어 낸 말인 줄 알았지만 알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긴장’과 ‘이완’의 효과는 천지 차이였다.

이장님댁 가족들이 마당에서 모판에 씨나락을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내 밝은 분위기에서 움직인다.
이장님댁 가족들이 마당에서 모판에 씨나락을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내 밝은 분위기에서 움직인다.

간전댁할머니나 오봉댁어머님이나 걸어 다니시기도 불편한 분들이지만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릴 때는 순간적인 힘이 나에게 뒤지지 않는다. 팔순인 일천댁어머니는 재작년까지 나락가마니 수 십 개를 혼자 경운기에 실으셨고, 젊었을 적 고랑에 빠진 경운기 대가리를 들어올린 것으로 유명한 김샌은 아직도 힘으로는 마을 최고이시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함께 있으면 좋은 기운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기운은 흔히 말하는 힘과 다르다. 힘은 강하고 딱딱하고 부딪치는 반면, 기운은 주변과 부드럽게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 전달되는 ‘에너지’에 가깝다. 각각의 색깔은 다르지만 이기려 하거나 누르려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대체로 몸에 힘 들어간 사람은 보기에도 안 좋고 성질도 사납다. 힘, ‘가오’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입사 초기, 인중과 눈썹 끝에도 힘을 준 대머리 선배 하나가 어깨를 귓볼까지 올려 붙이고는 쫄따구들에게 공식적으로 행해질 횡포를 알린 뒤 말했다. “내 말이 심하냐? 힘들면 말 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야!” 대꾸는 못하고 궁시렁 거렸다. “내가 중이냐? 니가 싫은 건데 니가 절이냐? 누가 먼저 나가나 보자” 결국 그 선배가 먼저 퇴사했고 몸에서 힘을 좀 빼더니 머리 숱도 늘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못자리에 넣기 전, 모판에서 자란 벼의 싹에 맺힌 이슬이 모판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못자리에 넣기 전, 모판에서 자란 벼의 싹에 맺힌 이슬이 모판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다시 예초기를 트럭에 싣고 논으로 향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뭘까.’ 컴퓨터, TV, 냉장고, 자동차, 스마트폰 등등.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를 테니 정답은 없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자. ‘있어서 정말 편한 것’ 말고 ‘없었으면 큰일 날 것’을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첫째는 세탁기가 아닐까 싶다. 세탁기가 아니었으면 가사노동의 강도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고, 가사분담 요구는 더욱 커졌을 거고, 힘든 빨래는 당연히 남자의 몫이 아니었을까. 매일 같이 쌓이는 빨래가 두려워 농삿일도 조심조심 하게 되고, 때문에 생산성은 떨어지고 식량자급의 길은 요원하고, 뭐 그랬을 성 싶다.

그 다음은 분명히 말하건대 예초기이다. 어릴 적 벌초하러 가는 날이 1년 중 제일 괴로웠고, 서투른 낫질에 알맞게 베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픈 척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 시간 이후로 낫을 안 들어도 된다는 게 기뻐서 표정을 숨기느라 힘들었다. 쪼그려 앉는 것도 힘들었고, 얼굴을 찌르는 억새를 째려보는 것도 힘들었다. 예초기가 없었다면 귀농 생각도 안 했을 거다. 내려왔다 해도 그렇다. 풀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고 긴 논두렁과 밭 주변을 내내 쪼그려 앉아 주먹만큼씩 낫질을 했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결국 생산성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국민들의 식생활 수준은 바닥을 면치 못했을 거라는 점에서 세탁기와 비슷하다.

못자리에 넣기 전, 모판에서 자란 벼의 싹에 이슬이 맺혀 있다.
못자리에 넣기 전, 모판에서 자란 벼의 싹에 이슬이 맺혀 있다.

날은 어두워지고 마음이 급했다. 잘 하면 해 떨어지기 전에 다 벨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예초기 엑셀러레이터를 힘껏 당기고 나아갔다. 날의 회전은 엔진 몫인데 왜 어금니에 힘이 가는지 아구가 아팠다. 잘 나간다 싶은 생각이 들 때 날이 흙 바닥을 치며 뒤로 강하게 튕겼다. 예초기 손잡이도 함께 밀렸고 무방비 상태로 아랫도리 급소를 맞았다. 통증이 오기 직전의 순간이 더 공포스럽다. 또 다시 주저 앉았다. 급속도로 기운이 나갔다. 아저씨의 힘 빼라는 말씀을 예초기가 대행했나 보다.

나머지를 포기하고 앉은 채로 쉬었다. 어두워진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오랜만이다. 언젠가 D동생이 말했다. “행님, 사람들이 별똥별 보면서 젤루 많이 비는 소원이 먼지 아신 당가요? ‘어어어’ 래요. 나는 엊그제 ‘억’ 했응게 돈 벌겄지라?” 바보 같은 눔. 세 번 말해야 되는 걸 몰랐나 보다. 나는 잽싸게 소리 질렀다. “1년 농사 5년 먹기, 1년 농사5년 먹기, 1년 농사 5년 먹기!” 아싸.

前 한국일보 기자 cama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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