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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일룸으로 한샘 텃밭 노리는 퍼시스… 위장계열사 만들다 회사이미지 추락

입력
2017.04.1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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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금동 퍼시스그룹 본사
서울 오금동 퍼시스그룹 본사

“터질 게 터졌다.”

2010년 7월 사무용 가구 1위 업체 퍼시스가 관계사 일룸을 통해 생활용 가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자 가구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일룸의 생활용 가구시장 진출 선언은 그동안 가구시장에서 유지돼 왔던 한샘과의 ‘암묵적 신사협정’이 완전히 깨졌음을 의미했다.

한샘에서 갈라져 나온 퍼시스는 그동안 사무용 가구 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며 한샘의 주 사업 영역인 생활용 가구시장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퍼시스의 시장 진출 선언으로 두 가구사의 경쟁은 불가피해졌다.

퍼시스의 공격 선언에 한샘도 강력히 응수했다. 한샘은 우선 계열사 한샘이펙스를 통해 사무용 가구 시장 공략에 나섰다. 또 퍼시스가 주도적으로 설립한 가구산업협회에도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으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호적이었던 두 회사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게 이때부터”라며 “결과적으로 퍼시스는 한샘과의 관계 단절로 불모지였던 생활용 가구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입지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무 가구 시장에 새바람

퍼시스는 한샘과 같은 뿌리를 가진 기업이다. 손동창(70) 퍼시스 회장은 한샘 생산과장으로 근무하다 1983년 퇴사해 한샘에 싱크대 상판을 만들어 파는 한샘공업을 창업했다. 한샘공업은 이후 한샘퍼시스를 거쳐 1995년 지금의 퍼시스로 이름을 바꿨다.

퍼시스는 1980년대 당시 개념도 생소한 ‘사무환경’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국내 사무 가구 시장을 장악해 갔다. 철재가구가 주를 이루던 사무용 가구 시장에 목재가구를 처음 도입한 것도 바로 퍼시스였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다른 업체들은 단순히 사무실에서 쓰는 책상과 의자를 파는 데 초점을 뒀지만, 퍼시스는 ‘사무 환경을 고려한 가구’라는 콘셉트로 시장에 접근했다"며 "디자인과 기능성을 중시한 퍼시스의 목재가구는 직원 근무 환경을 높이려는 대기업 등에서 높은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경제발전으로 고급 사무 가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퍼시스의 성장 속도도 빨라졌다.

1990년대부터는 대기업뿐 아니라 병원과 학교, 관공서 등지에서도 퍼시스의 가구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수십억원에 불과했던 퍼시스 매출은 90년대 1,000억원대를 넘어 2006년 2,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매출은 2,315억원을 기록했다. 퍼시스 관계자는 “한 때 우리나라 1,0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인 550개 기업이 퍼시스의 사무 가구를 사용했다”며 “미국의 야후, 일본의 도요타 등 해외 유수기업에도 가구를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장계열사 꼼수로 회사 이미지 먹칠

사무용 가구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확보한 퍼시스는 정부(공공) 조달용 가구 시장에서도 맹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 퍼시스가 계속 이 시장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정부가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 공공 조달 납품 자격을 중소기업에만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퍼시스는 이 시장을 떠나는 게 순리였지만, 손동창 퍼시스 회장은 공공 조달 시장을 포기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퍼시스의 위장계열사로 불리는 ‘팀스’가 출범한 배경이다.

퍼시스는 2010년 그룹에서 팀스를 인적분할하고 퍼시스와 관계가 없는 회사라고 선언한다. 중소기업 규모의 팀스를 통해 공공조달 시장에 계속 참여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2012년 국회가 대기업의 위장계열사로 의심을 받는 중소기업의 조달시장 퇴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팀스는 더 이상 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조달시장에서 퇴출된 팀스는 현재 퍼시스그룹의 다른 브랜드 가구를 생산하며 회사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팀스의 매출은 2012년 819억원에서 지난해 99억원으로 90%가까이 급감했다. 팀스의 최대주주는 퍼시스그룹 지주회사인 시디즈(40.58%)와 바로스(15.15%) 등으로 사실상 그룹에 다시 편입된 상태다. 팀스가 퍼시스와 관계없는 회사라는 당시 발표가 거짓이었다는 걸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가구업계 새 바람을 일으키며 명성을 얻은 퍼시스의 최대 오점은 위장 계열사 팀스”라며 “매출을 확대하려고 꼼수를 부리다 기업 이미지나 도덕적 차원에서 치명적 과오를 남긴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일룸의 성공과 후계구도

퍼시스 계열사 중 최근 가장 높은 주가를 올리는 곳은 일룸이다. 한샘과의 일전을 선언하며 생활용 가구 시장에 진출한 일룸은 1980년대 퍼시스의 ‘고급화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며 생활가구 시장에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학생용 가구 시장에서 일룸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품질은 괜찮다’는 입소문이 학부모들 사이에 퍼지면서 일룸은 자녀 공부방 가구의 베스트셀러로 부상한다. 최근엔 인기 배우 공유를 기용해 광고전을 펼치며 침대, 소파 등 나머지 생활용 가구 시장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그 결과 2009년 512억원이던 일룸 매출은 지난해 1,555억원으로 5배 이상 커졌다.

이러한 일룸의 성공과 함께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해마다 일룸의 지분 보유분을 높여가고 있는 손동창 회장의 장남 손태희(38) 퍼시스 그룹 부사장이다. 손 부사장은 현재 일룸의 지분을 29.11%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하지만 2년 전만해도 손 부사장의 일룸 지분율은 2.07%에 불과했다.

손 부사장의 지분율이 늘어나는 대신 손동창 회장의 일룸 지분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14년 일룸의 최대주주였던 시디즈(45.84%)와 손 회장(18.9%)은 현재 일룸 지분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룸의 지배권이 아버지에서 아들한테로 완전히 넘어간 셈이다.

다만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퍼시스에 대해서는 아직 손 부사장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퍼시스의 대주주인 시디즈의 대주주 역시 손동창 회장(80.51%)이다. 하지만 손 부사장이 장악한 일룸과 그룹 지주사격인 시디즈가 향후 합병할 경우 손 부사장의 퍼시스그룹 장악력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빠르게 덩치를 불리고 있는 일룸이 몇 년 뒤 시디즈와 합병할 때는 손 부사장이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퍼시스 관계자는 “현재 손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자문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후계구도와 관련해 현재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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