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오늘의 눈] 영화 ‘감기’의 차인표 같은 대통령은 어디에

입력
2015.06.07 20:38
0 0
영화 '감기'에서 대통령(차인표, 오른쪽)은 무책임한 정치인들과 미국의 간섭 속에서 국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인다.
영화 '감기'에서 대통령(차인표, 오른쪽)은 무책임한 정치인들과 미국의 간섭 속에서 국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인다.

메르스 확산 여파로 영화 ‘감기’(2013)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개봉 당시 평단은 물론 관객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 영화에 갑자기 관심이 쏠린 건 단지 바이러스를 다룬 재난영화가여서가 아니라 정부가 전염병이라는 재난 앞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걸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그려냈기 때문이다. IPTV에선 이 영화의 하루 재생 회수가 80배 이상 늘었고 포털사이트의 영화 평점도 9점, 10점을 주는 네티즌들로 인해 급상승하고 있다. ‘감기’를 언급한 SNS나 포털사이트 댓글을 보면 “예전 같으면 1점을 줬겠지만 우리 대통령이 이 영화 속 정치인들처럼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아 10점을 주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는데 지금 현실 상황과 너무나도 똑같다” “현실을 예언한 영화라고 해서 성지순례 왔다” “감독의 선견지명에 놀랐다” “개봉할 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재평가를 해야 한다”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치사율 100%의 변종 감기 바이러스가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1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했으나 전국 311만명에 그치며 극장수입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실패했다.

영화에서 정부는 성남시에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지는 사태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특별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며 국민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폭동이 일어날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군 병력을 투입해 도시를 폐쇄하도록 조치하고 미국은 미사일을 발포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영화에서 새삼 다시 주목 받는 캐릭터는 조연에 불과한 대통령(차인표)이다. 미국의 강경 대응에 대통령은 “그들은 내 국민이야”라며 끝까지 국민을 지켜 낸다.

재난 사태를 맞아 정치인들이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건 영화 속이나 현실이나 똑같다. ‘감기’에서 한 국회의원은 “신종플루 때도 그 난리를 치더니 막상 사망자 수는 계절 감기랑 비슷하지 않았냐”고 반문하고, 또 다른 정치인은 “젊은 애들이 인터넷이다 유튜브다 해서 악성 루머를 퍼트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문형표 복지부장관은 “마스크를 쓰는 것은 위생을 위해 장려하지만 메르스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놓고 인천공항을 방문할 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최경환 부총리는 메르스와 관련해 악의적 유언비어나 괴담 유포자를 처벌하겠다고 한 뒤 출국했다.

영화 속 대통령은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 ‘감기’에서 차인표는 “정부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그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고 외치며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현실에선 어떤가.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은 초기 대응이 중요한데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남 얘기 하듯 말했다. 감독이 차인표 같은 대통령을 내세운 건 믿을 만한 지도자가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