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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자

맹하경 기자

등록 : 2016.03.31 04:40

장애인에게 여전히 높은 투표소 문턱

등록 : 2016.03.31 04:40

28일 광주시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선거장비 시연 설명회 도중 한 장애인이 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기표소에서 투표한 뒤 투표함에 모의 투표용지를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평소 휠체어로 이동하는 지체장애인 A씨는 선거날 아침 투표소에 가기 위해 장애인전용콜택시를 불렀다.

하지만 대기 순번이 밀려 3시간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투표소는 승강기도 없는 지하에 마련돼 있었다. 계단에는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나무판이 깔려 있었으나 위태로워 보여 이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려 해도 안내도우미는 다른 장애인을 상대하고 있는지 눈에 띄지 않았고, 기표대도 높아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간신히 투표를 마친 A씨는 다시 한참을 기다려 장애인전용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귀가했다.’

장애인들이 지금까지 겪은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한 선거 당일 투표 고행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처럼 장애인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 보장이 미흡하다는 여론이 끊이지 않자 4ㆍ13 총선에 앞서 개선안을 내놓고 시연회와 투표 체험 행사까지 열었다. 그러나 정작 수혜자인 장애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참정권 차별을 없애는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은 탓이다.

장애인들이 꼽는 가장 큰 불편함은 부족한 이동수단이다. 뇌병변 1급장애인 이석현(24)씨는 30일 “지난 지방선거 때에도 차량 지원이 안돼 어머니 차를 타고 투표장에 갔다”며 “주차장에 도착해도 보조 인력이 거의 없어 투표소까지 이동하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중앙선관위는 이런 고충을 감안해 장애인콜택시와 장애인전용차량 공급을 늘려 이동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문제는 현재 구비된 장애인 차량으로는 전체 장애인 유권자를 감당하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등록 장애인을 포함해 전국 장애인 유권자수는 240만명에 이른다. 이 중 거동 자체가 힘든 1,2급 중증장애인으로 범위를 좁혀도 53만여명이 전용 차량이 필요한데, 장애인전용콜택시는 2,300대에 불과하다. 중증장애인자립생활(IL) 센터에 있는 장애인전용차량도 100여대에 그치고 있다. 내달 8,9일 예정된 사전투표로 유권자가 분산된다 해도 모든 장애인을 수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체장애인 심지용(26)씨는 “콜택시 대기시간이 평소에도 2시간은 기본인데 선거날에는 더 많이 몰릴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규모를 확대하고 배차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관위 측은 “추가 확대 규모는 선거 당일 상황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세부계획은 설명하지 못했다.

장애유형별 ‘맞춤형’ 대책도 세밀함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선관위는 상지(上肢)지체 장애인을 위해 손목활용형, 마우스형 두 종류의 특수 기표용구를 마련했다. 시각장애 투표자에게는 기호, 정당명, 성명이 점자로 표시된 투표보조용구가 제공된다. 하지만 새 점자용구를 확인한 시각장애인 조모(31)씨는 “용지 기표 칸이 너무 작아 도장을 알맞게 찍기 어렵고 제대로 기표했는지 확인할 수도 없어 무효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특수 기표용구도 오른손잡이용으로 설계돼 왼손만 움직이는 장애인에겐 실효성이 낮다는 의견이 나왔다. 2016총선장애인연대 관계자는 “발달장애인의 이해를 돕겠다며 준비한 동영상 역시 선거가 임박해 만든 3분짜리라 투표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장애인들의 투표 참여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지난해 11월 장애인 유권자 602명을 상대로 실시한 총선 관련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78.5%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에도 전국 투표율(56.8%)에 비해 장애인 투표율(73.6%)이 월등히 높았다. 때문에 선관위가 개선안을 추진할 때 장애인들과 좀 더 충분히 논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공식적인 개선 방안이 발표되기 전에 선관위 쪽에서 전화 한 통 받은 적이 없다”며 “선관위가 유관기관과 협의했다고 하나 비장애인 시각으로 보완책을 내놔 장애인들은 뒷전으로 밀렸다”고 비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장애인을 대변하는 단체가 여러 곳이라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며 “이번 총선에서 부족한 부분을 참고해 다음 전국 선거 때는 최대한 장애인 시각에 다가가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4ㆍ13 총선 장애인 투표 편의 개선사항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맹하경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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