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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화산 폭발... 인간은 그 재해를 기회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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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화산 폭발... 인간은 그 재해를 기회로 만들었다

입력
2017.04.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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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 후

기근에 콜레라까지 덮쳤지만

음울한 날씨ㆍ붉은하늘 때문에

드라큘라ㆍ인상파 등 탄생시켜

재앙 덕분에 엘리트들 재교육

장기적으로 유럽은 안정 구가

폼페이를 묻어버린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윌리엄 터너가 그린 상상화. 정작 터너는 이보다 더 큰 화산폭발이 자신의 시대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이상하게 변한 하늘 빛만 열심히 그렸을 뿐이다. 소와당 제공
폼페이를 묻어버린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윌리엄 터너가 그린 상상화. 정작 터너는 이보다 더 큰 화산폭발이 자신의 시대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이상하게 변한 하늘 빛만 열심히 그렸을 뿐이다. 소와당 제공

세계사를 바꾼 화산 탐보라

길런 다시 우드 지음ㆍ류형식 옮김

소와당 발행ㆍ432쪽ㆍ2만5,000원

“빌어먹을 안개, 비. 끝날 줄 모르는 축축한 날씨. 대낮에도 한밤 중처럼 촛불을 밝혀야 한다네.”

1816년 7월말.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바이런은 친구에게 짜증 가득한 편지를 썼다. 알프스를 구경하러 제일 좋은 뷰포인트를 찾아 스위스 제네바까지 갔건만 날씨가 너무 나빠 ‘방콕’ 신세를 못 면했다. 심심풀이 삼아 친구들과 무섭고 기괴한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쓴 게 ‘드라큘라’다. 함께 놀던 친구의 부인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구상했다.

1816년 ‘빛과 색채의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는 이후 몇 년 간 하늘의 빛깔을 자세히 관찰한 연작을 그린다. 그가 그린 하늘 빛의 특징은 “생생한 붉은 색”이다. 터너 뿐 아니다. 동시대 화가로 ‘풍경화의 대가’로 꼽히는 존 컨스터블 역시 이 즈음 몇 년 간 구름 모양을 자세히 관찰해 그린 시리즈를 남겼다. 알려졌다시피 이들 그림은 인상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이들은 왜 갑자기 고개를 꺾어 하늘을 그토록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을까. 1816년 컨스터블이 영국 남부 해안 웨이머스로 신혼여행을 가서 남긴 그림이 힌트다. 한 여름 신혼여행의 풍경이라기엔 너무나 을씨년스럽다.

바이런과 셰리의 기괴한 문학적 상상력, 터너와 컨스터블의 하늘빛과 구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이끌어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그 전 해, 그러니까 1815년 4월 10일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숨바와섬의 탐보라 화산 폭발이었다. 돌진적 근대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작용이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유화물감의 발달과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이 인상파를 낳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존 컨스터블이 1816년 여름 신혼여행 갔던 영국 남부 해안가에서 그린 '웨이머스 베이'. 여름임에도 하늘이 칙칙하다. 화산재 영향이다. 소와당 제공
존 컨스터블이 1816년 여름 신혼여행 갔던 영국 남부 해안가에서 그린 '웨이머스 베이'. 여름임에도 하늘이 칙칙하다. 화산재 영향이다. 소와당 제공
독일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1816년작 '항구에 정박한 배'. 화산재는 빛을 차단해 어둑하게 만들면서도 빛의 산란을 증폭시켜 붉은 색 등 다양한 빛깔을 뿜어내게 한다. 기후학자들은 이 그림 속 하늘 색을 전형적인 화산재 낀 하늘 색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소와당 제공
독일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1816년작 '항구에 정박한 배'. 화산재는 빛을 차단해 어둑하게 만들면서도 빛의 산란을 증폭시켜 붉은 색 등 다양한 빛깔을 뿜어내게 한다. 기후학자들은 이 그림 속 하늘 색을 전형적인 화산재 낀 하늘 색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소와당 제공

탐보라 폭발은 삼각형 모양의 산머리의 1,600m 높이 부분이 통째로 날아가 지름 6㎞ 규모의 칼데라호를 남겼고 주변 560㎞ 범위까지 용암이 흘러내린, 1만2,000년 이래 최대규모 폭발이었다. 1809년으로 적도 인근 지역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화산 폭발에 이은 탐보라 화산폭발은 성층권을 화산재와 유황으로 가득 메웠다.

이는 햇빛을 막았고, 기온을 떨어뜨렸다. 농사는 망가졌고, 기근이 덮쳤고, 해수면이 높아져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면서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가 창궐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817년 인도 벵골만에서 시작된 치명적 콜레라가 무역로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근 들린 유럽에 식량을 팔다 미국은 떼돈을 벌었으나 그 부작용으로 1819년 대공황에 내몰렸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대지주였던 토머스 제퍼슨은 그로 인해 파산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당시엔 아무도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화산폭발 당시 ‘자바의 왕’이라 불렸던 인도네시아 지역 식민 지배자 스탬퍼드 래플스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온갖 자료를 수집해 기록한 걸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탐보라 화산 폭발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곤 “독자들께서 관심이 없지는 않을 하나의 에피소드”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 정도다.

‘세계사를 바꾼 화산 탐보라’는 이렇게 잊혀진 탐보라 화산 폭발의 파급 효과를 정밀하게 추적한 기록이다. 1816~18년까지 3년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진 이상 기후 현상에 대한 각종 에피소드들은 많다. 저자는 이 에피소드들을 ‘탐보라 화산재 두께 분포’ ‘에든버러 지역 강풍 일수 통계’ ‘인도 벵골만을 발원지로 하는 콜레라 확산 지도’ ‘알프스 인근 빙하 분포 변화 지도’ ‘청나라 말기 농업 한계 생산지 지도’ ‘전세계 큰 강 95개의 유량 변화 추이’ 등 환경과 기후에 관련된 동원 가능한 모든 과학적 자료들까지 정교하게 짜맞춰 탐보라 화산 폭발이 ‘와~! 폭발했다’ 이상으로 전세계 곳곳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쳤음을 그려 보인다. 글로벌 규모의 역사책이자,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과학책이자, 앞서 잠깐 맛봤듯 19세기 문화예술 지형도를 새롭게 그려낸 책이기도 하다.

탐보라 화산 정상에 위치한 지름 6㎞의 분화구. 소와당 제공
탐보라 화산 정상에 위치한 지름 6㎞의 분화구. 소와당 제공

기후 변동에 대해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얘기는 ‘17세기 소빙하기’다. 명ㆍ청 교체 등 17세기 동북아 정세 급변은 소빙하기 때문이라는,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소개한 가설이다. 탐보라 폭발도 영ㆍ정조 중흥기 이후 19세기 조선 멸망사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을까. 굉장히 흥미롭지만, 자칫 ‘조선은 완벽했는데 자연재해 때문에 그만…’이라는 쪽으로 흐를 우려도 크다.

그래서 저자의 이런 서술은 고맙다. “(탐보라 화산 폭발) 이후 19세기 동안 장기적으로 보자면 유럽은 안정을 구가했다. 이는 1816~1818년 전면화된 비인도적 재앙 덕분에 엘리트 계층이 재교육을 받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후 엘리트 계층은 폭넓은 시민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됐다. 그러한 과정에서 극단적인 자유방임 이데올로기도 약화됐다.” 재해를 기회로 만드는 것도, 재해를 재앙으로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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