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재학
논설위원

등록 : 2017.11.10 16:21
수정 : 2017.11.10 17:52

[메아리] 지방분권 개헌이 현실적이다

등록 : 2017.11.10 16:21
수정 : 2017.11.10 17:52

격차사회 해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7개월 내 권력구조 개편 합의는 쉽지 않아

이견 없는 기본권 확대ㆍ지방분권 개헌부터

한국은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적 경향이 강한 나라다. 해방 이후 산업화ㆍ민주화 과정에서도 중앙집권적 국가 성격은 그대로 유지됐다.

올해로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지 22년이 됐지만, 입법권과 재정권이 없는 ‘무늬만 자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권력과 자본의 중앙집중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격차사회를 만들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불균형은 이제 교정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더욱이 한국의 지방소멸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30년 안에 지금 있는 마을 10곳 중 4곳은 거주 인구가 한 명도 없는 인구소멸 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의 빈집은 최근 20년 새 4배나 급증했다. 경북 북부와 전남 등의 군 단위 지역은 이미 폐가로 뒤덮이고 있다.

선진국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이리 심한 나라는 없다. 인구와 자원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은 안보와 환경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지금 밀려오는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흐름을 중앙집권적 국가시스템으로 감당하긴 쉽지 않다. 지방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독립적인 지방정부들이 자율과 경쟁을 통해 국가 전체의 혁신을 이뤄 내야 한다. 격차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분권형 국가전략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마련돼 있다.

우선 지방권력의 왜소함을 상징하는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 대신 자율성이 강조되는 ‘지방정부’로 바꿔야 한다. 지방정부에 걸맞게 교육, 치안, 환경 등 일상생활 업무는 과감히 지방정부로 넘겨야 한다. 현재 78 대 2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도 조정해 자치재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돈줄을 쥔 상황에서 진정한 지방분권을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지방분권이 단순히 중앙권력의 일부를 떼어 주는 권력 나눠먹기가 돼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의 수직적ㆍ관료적 통제가 사라지면 도덕적 해이와 자원 낭비가 초래될 우려가 크다. 재정 및 행정적 권한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양하는 대신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도록 시민단체 등을 통한 외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한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공화국’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개헌 공약을 내세웠어도 막상 대통령이 되면 반대하기 마련인데, 현역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자고 앞장서니 더할 나위없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 강화를 개헌안에 담자고 제안했다. 정치권에선 박근혜 정부의 참담한 실패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된 만큼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최근 ‘포괄적 개헌’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 의장은 “권력구조 개편만 담는 개헌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권력구조 문제가 빠진 개헌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30년 만에 국가의 틀을 새로 짜는 개헌인 만큼 기본권 확대, 지방분권 강화, 권력구조 개편을 모두 담는 게 바람직하다. 문제는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정치권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국회가 작년 말 개헌특위를 만들어 1년 가까이 논의했는데도 여당은 4년 중임 대통령제, 야 3당은 이원집정부제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개헌 논의를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자는 입장이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많이 줄었다. 국민 대다수는 굳이 대통령 중심제를 바꿀 필요성을 못 느끼는 분위기다. 촛불 정국을 거치며 현행 헌법으로도 민주적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여야 정치권이 향후 7개월 내 권력구조 합의안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년 6월을 넘기면 언제 다시 개헌에 뜻을 모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자칫 개헌 동력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현역 대통령까지 나선 개헌 호기를 권력구조 다툼으로 날려버릴 텐가, 아니면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기본권과 지방분권 개헌부터 추진할 것인가. 정치권이 답해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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