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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심판이다

입력
2014.06.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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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정치적 책임 묻는 길은 선거뿐

국정운영 방식 변화 계기 유권자가 만들어야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론은 먹혀 들기 어려웠다. 집권 초반 여권의 힘이 막강한데다 중간평가 프레임이 형성되기에는 시기가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일변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이 같을 수는 없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애타는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해경은 침몰하는 배를 보고도 뛰어들지 못했다. 구조와 수색작업은 굼떠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를 자아냈고, 대책본부는 피해집계조차 못해 우왕좌왕했다. 그러면서 수백명의 정보형사를 동원해 유족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언론통제에 열을 올렸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정부를 제대로 된 정부라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정치권력을 잘못 행사한 정부에 대한 심판이다. 이번 선거는 세월호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에 책임을 묻고 바로잡는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한다.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의지가 드러나지 않으면 집권세력은 잘못을 쉽게 망각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숙였던 고개를 다시 쳐들고 과거의 행태를 답습할 게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대다수 국민이 공감한다. 이 점에서 있어서는 보수와 진보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층은 “이제 박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한다”며 결집을 호소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눈물을 닦아줘야 할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세월호 유족이다. “70년 적폐가 원인이지 대통령 책임이 아니다”고 강변하지만 학생들을 살려내지 못한 책임은 고스란히 현 정부의 몫이다.

여권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해 달라”고 읍소한다. 하지만 국정 안정론에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와 철학의 변화가 확실히 감지돼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는 대통령의 인물 발탁 기준이 여전히 국민의 눈높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국정운영 파행의 한 가운데에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감싸고 도는 데서도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데 면죄부를 줘야 할 이유가 없다.

세월호 참사 후 유권자의 변화의 조짐은 40대 여성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대선 이후 박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분류됐다. 40대 여성의 55.6%가 박근혜를, 43.4%가 문재인을 찍었다. 두 후보간 최종 득표차가 3.6%포인트였던 것에 비해 40대 여성의 표차는 12%나 됐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희생자들과 같은 또래의 자식을 둔 이들이 대거 ‘앵그리 맘’으로 이동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세월호 사태를 전후로 40대 여성의 대통령 지지도는 20%포인트나 떨어졌다. 박 대통령의 ‘눈물의 담화’에도 이런 추세는 요지부동이다.

세월호가 아니더라도 박 대통령 집권 이후의 성과를 보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출범 이후 줄곧 국가정보원 대선개입과 서울시 간첩 증거 조작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이 아니라 사과에 인색하고 책임자를 감싸 안은 탓이다. 경제는 여전히 불황의 늪에 빠져있고, 새로운 동력이 될 거라던 창조경제는 어디론가 실종돼 버렸다. 규제 완화는 반복되는 대형 사고에 추진력을 잃어버렸다. 연초부터 ‘통일 대박’이라는 신기루 같은 구호에 취해 있는 사이 북한과 일본으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처지에 놓였다. 뭐 하나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실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 전반에 걸친 전략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그 계기는 이번 선거가 돼야 하고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강제해야 한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2006년 중간선거에서 한해 전에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부실 대응한 부시 정권에 엄정한 책임을 물었다. 그러자 안전시스템이 대폭 바뀌고 정국 운영 기조가 유연해졌다. ‘카트리나 모멘트’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6ㆍ4지방선거를 정국이 달라지는 모멘트로 만들어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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