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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메르스, 중국과 한국의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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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메르스, 중국과 한국의 다른 점

입력
2015.06.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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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공항에서 공항직원이 입국하는 승객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홍콩공항에서 공항직원이 입국하는 승객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민첩했다. 중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의심 환자 한국인 K씨가 홍콩을 거쳐 중국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시로 입국한 사실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통보 받은 것은 지난달 27일 밤이었다. 중국은 곧 바로 추적에 나서, K씨를 28일 새벽2시 ‘후이저우시의 지정 병원’에 격리한 뒤 이를 언론에 알렸다. 후이저우시는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도 남쪽에 속한다. 위험 지역의 공개로 중국의 다른 지역 주민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중국은 공개했다. 28일 확진 판정을 받은 K씨가 “후이저우에서 광저우(廣州)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문이 떠 돌자 당국은 곧 바로 “K씨는 후이저우 중신런민(中心人民)병원에서 계속 치료중”이라며 구체적인 병원명을 공개했다. 후이저우 중신런민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취재 등도 전면 허용됐다. 인터넷에서는 더 이상 괴담이 퍼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중국은 국민의 협조를 구했다. K씨가 홍콩에서 광둥성 후이저우까지 이동하는 동안 탔던 버스의 시간과 차량 번호판까지 공표한 뒤 이 차에 함께 탄 이들은 자진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요청한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중국은 일주일 만인 지난 4일 밀접 접촉자 78명을 모두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 중 이상 증세를 보이는 이는 없다.

중국은 평소 숨기는 게 많은 나라다. 중국의 실질적인 국방비는 1급 비밀이다.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이 유혈 진압된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이를 공개 석상에선 얘기할 수 없다. 공직자 재산은 모두 비공개다. 보도는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그런 중국조차 이번 메르스 대응엔 가능한 정보를 모두 공개했다.

이는 지난 2003년 중국에서만 650명 가까운 이가 숨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사태의 교훈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광둥성에서 시작된 사스가 수도 베이징(北京)을 엄습해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도 시 당국은 감염 환자만 12명(3월말 기준)에 불과하다며 사건을 은폐하는 데 주력했다. 결국 진실은 한 의사의 고발로 전 세계에 드러났다. 이후 새로 임명된 베이징시장은 “1은 1이고 2는 2다”며 정확한 정보를 공개했다.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매일 발표되며 불안감이 점차 사라지고 사스의 기세도 꺾였다. 이를 진두지휘했던 이가 바로 최근 반(反)부패 투쟁의 선두에 선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다.

이번에 한국의 메르스 대응은 기민하지 못했다. 병원명 등 정보를 독점한 당국이 이를 꽁꽁 숨기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그 결과 홍콩 당국자가 시민들을 향해 “성형외과를 포함, 한국의 모든 의료기관에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국 당국에서 메르스 환자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한국 전체 의료기관을 피하도록 안내했다는 게 홍콩 당국 설명이다. 병원명을 보호하기 위해 결국 한국 전체가 불안한 나라로 전락했다. 정부는 뒤늦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아직도 국민들을 관리 대상으로만 보는 시대 착오적이면서 권위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 지 의심하게 한다. 그 동안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 혹 무지한 백성들이 불안에 떨면서 사회에 혼란이 일 것을 너무 걱정했기 때문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정부보다 똑똑하고 지혜롭고 현명하다. 이미 정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걱정하게 된 지 오래다. 국민은 정부의 통제 대상이 아니라 정부를 바꾸는 주인이다.

정부는 국민 앞에 모든 상황을 솔직히 밝힌 뒤 협조를 구해야 한다. 정부와 온 국민이 함께 힘을 합칠 때 메르스도 이길 수 있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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