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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낙관 않는 희망, 절망 않는 행동

입력
2016.07.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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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물이 절반쯤 담긴 유리잔이 있다고 치자.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오래된 쪽지가 놓여 있다. ‘잔에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서술하시오.’

영국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쓴다. “저 유리잔은 이미 절반이나 비워졌을뿐더러 저것에 담긴 액체도 꽤 맛없고 어쩌면 치명적일 독물이 거의 확실하다.” 내가 선생이라면 만점을 주고 싶은 답안이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곧이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나의 비관적인 성정을 무릅쓰고라도 희망에 관한 글을 쓰기로 작심했다.”

분명 희망이라는 단어는 낙관주의자들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노력하기만 한다면 삶은 더 나아질 거라고. 희망을 잃지만 않는다면 인생은 언제나 살만할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희망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다복한 미래를 믿는 그들의 신념은 현재의 본질적 건전성을 믿는 그들의 신념에서 연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현재는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좀처럼 낙관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에 따르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그런 긍정 이데올로기다. 유방암 판정을 받고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 유방암 환자들의 커뮤니티를 찾은 그녀는 예상과는 달리 쾌활하고 낙관적이기까지 한 그곳의 분위기에 깜짝 놀란다. “긍정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유방암 환자들의 문화에서 지상명령과도 같이 군림하고 있어 불행하다고 느낄 경우엔 죄의식이 들 정도다.”

그것은 일종의 강요된 긍정이다. 긍정적인 생각이 암을 낫게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부정적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즐거운 척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환자들은 분노와 공포라는 당연한 감정을 억압하고, 그런 자신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며 죽어간다.

그것은 환자가 아닌 환자를 대면하는 의료 산업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태도다. 따지고 보면 회사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긍정적인 자세로 낮은 봉급에도 만족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야근을 불사하는 직원은 종종 건강을 잃고, 가정을 챙기지 못하며, 언젠가는 (자의나 타의로) 회사를 떠날 것이다. 이러한 낙관주의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글턴은 말한다. “실제로 낙관주의는 지배계급 이념들의 전형적 구성요소다.”

따라서 이글턴은 희망을 낙관주의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고자 한다. 희망을 희망이 필요한 자리로 돌려놓는 것. 그것이 책 ‘낙관하지 않는 희망’을 통해 이글턴이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온통 비관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희망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 권의 책을 몇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이글턴은 이렇게 주장한다. “암담한 미래전망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태도일 수 있다. 오직 자신이 처한 상황을 위기상황으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상황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산다. 그렇기에 우리 시대의 야만에 늘 낙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때 이글턴이 책머리에 인용하는 허버트 맥케이브의 말과 같은 태도를 지니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2016년의 한국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우리는 낙관주의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만인의 사랑을 받으리라고 기대되는 사랑스러운 세계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 있더라도 오직 정의를 편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수행해야 할 소소하고 국지적인 과업 몇 가지를 떠맡을 따름이다.”

금정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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