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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공 사발 원샷… 대학가 아직도 신고식

입력
2017.04.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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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의식 전통이라는 이유로

몸에 술 뿌리고 강제적 게임

소규모 동아리 등 구태 여전

“알아서 마시라 얘기하지만

대학 생활 지장 받을까 눈치”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A대의 한 단과대학 농구동아리는 매년 학기초 신입생 20~30명을 대상으로 그들만의 ‘전통 환영의식’을 치른다. ‘공오름식’이라 불리는 이 행사는 커다란 그릇에 술을 가득 담아 돌려 마시는 ‘사발식’과 비슷하지만, 지름 약 25㎝의 농구공을 반으로 잘라 소주를 채워 마신다는 점이 다르다. 그릇(농구공)의 바닥이 둥글어 한 번 손에 들면 다 마실 때까지 바닥에 내려놓을 수 없는 게 특징이다. 본인이 다 마시거나, 옆 신입생이 받아 마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동아리 회원 B씨는 6일 “올해도 행사는 어김없이 진행됐다”며 “여학생에겐 장식용 소형 농구공에 마시도록 하는 나름의 배려를 하면서 괴롭히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술을 못 마시는 친구들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등 구태가 반복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고 했다.

사발식 등으로 대표되는 대학가의 가학적 음주 신고식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특히 소규모의 선후배들이 함께 하는 학내 동아리의 경우 전통이라는 이유로, 재미 있다는 이유로, 각양각색의 아이디어가 동원되면서 신입생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신입생들 몸에 술을 마구잡이로 뿌리는 곳이 있는가 하면, 선배 이름 맞추기 게임을 해 틀릴 때마다 술을 강제로 마시도록 하거나, 아예 행사에 앞서 ‘토복(토사물을 처리하기 쉬운 재질의 옷)’을 맞춰 입고 오라는 지시를 내리는 곳도 있을 정도다.

선배들은 ‘서먹함을 없애고 최대한 빨리 친해지기 위해서’라는 등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신입생들은 괴로움을 호소한다. 특히 술 자체를 못하는 학생들은, 전통의식을 따르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한 대학 신입생은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음주 신고식을 한다는 선배 얘기를 듣고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했다. 충북의 한 대학 신입생 정모(19)씨는 "술을 못 마시는 신입생들에겐 가혹한 신고식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안 하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어렵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이모씨는 “동아리 특성상 선배들과의 관계가 대학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동아리에서 탈퇴를 하자니 그에 따르는 비난과 차별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 대학을 졸업한 이모(26)씨는 “선배들이 ‘알아서 마시라’며 따라주고 이를 후배가 받아 마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술 강권 문화 탓에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생들의 불만과 각종 사고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지만 대학 측에서는 ‘학교 공식 행사가 아닌 동아리 내 활동에 개입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음주문화 개선 캠페인이나 강좌를 여는 정도의 노력이 전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술의 위험성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대학생들은 그릇된 술 문화조차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대학의 적극적인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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