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광진 기자

등록 : 2017.09.05 04:40

[혁신도시 10년, 내일을 묻다] 구도심 쇠퇴 부르는 ‘블랙홀’… 멀어지는 균형발전

<1>한 지붕 두 가족, 갈 길 먼 혁신도시

등록 : 2017.09.05 04:40

경북혁신도시 전입자 절반이 김천서

울산선 수해 원인 놓고 구도심과 갈등

'지역 거점' 취지 살려 구도심과 상생을

경북 김천시 율곡동 경북혁신도시 전경. 김천시 제공

경북 김천시 율곡동은 4년 전만 해도 행정구역 지명조차 없었고, 허허벌판이던 지역이다. 지금은 한국전력기술, 한국도로공사 등 서울 및 수도권에 밀집해있던 국내 주요 공기업과 연구기관, 고층아파트들이 줄지어 섰고, 도로변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식당, 복합상영관 등 각종 편의시설이 빠짐없이 들어섰다. 정부가 국토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수준 높은 정주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한 경북혁신도시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에서도 가장 빨리 진척된 ‘모범생’다운 모양새를 갖췄다.

현재 김천시 읍면동 중 3번째(1만8,000여명)로 많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1위로 등극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지난 달 31일 경북혁신도시에서 직선거리로 4㎞ 가량 떨어진 김천시 평화동 김천역 앞 구도심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한때 신한은행 김천금융센터에서 국민은행 김천지점까지 약 500m 거리는 병원과 약국, 식당, 옷가게, 화장품가게 등이 번성한 김천의 중심상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명 아웃도어 의류 판매점은 의류 땡처리장으로 바뀌었고, ‘점포 임대’가 붙은 가게만 15곳이나 됐다. 혁신도시의 팽창으로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임경규 평화동주민협의체 위원장은 “혁신도시 입주가 본격화한 4, 5년 전부터 구도심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썰물처럼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월부터 올 7월 말까지 경북혁신도시 전입자 1만1,450명 중 구도심에서 온 전입자가 5,740명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주말인 3일 오전 경북 김천시의 중심가인 평화동 일대 상가들이 군데군데 문을 닫거나 임대를 내놓고 있다. 김천=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주말인 3일 오전 경북 김천시의 중심가인 평화동 일대가 점심시간 인데도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천=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산ㆍ학ㆍ연ㆍ관 협력을 통한 혁신으로 새로운 차원의 미래형 도시를 추구하기 위해 전국 10곳에 건설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한 혁신도시가 특별법 제정 10년이 지나면서 이전대상 공공기관 대부분이 이전을 마쳤지만,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는커녕 지역 내에서 또 다른 형태의 불균형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혁신도시가 주변지역 인적ㆍ물적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구도심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높아지고 있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는 한국농어촌공사, 한전KPS, 한전KDN,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낯익은 공기업 브랜드가 들어서있고, 도심에는 대형상가와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뤄 마치 서울 광주 등 대도시 중심가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의 ‘천년목사골’ 나주 시내는 딴판이다. 구도심 중심상가는 수업을 마친 학생 등으로 붐볐지만, 이 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빈 가게, 빈 집이 즐비했다.

나주시민 조성민(66)씨는 “가뜩이나 젊은 층이 도시를 떠나는데, 혁신도시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많아 구도심은 더욱더 침체하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경남 진주시 경남혁신도시 역시 구도심 쇠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깨끗한 도시환경과 인프라 때문에 젊은 층의 혁신도시 유입이 가속화하고 있다. 진주시는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구도심에 대한 대대적인 도시재생사업에 나서고 있다.

혁신도시를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거점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지역사회와 함께할 동반성장전략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공공기관 이전을 마무리한 강원 원주시 강원혁신도시는 2단계 핵심사업인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은 첫발도 내딛지 못한 상태다. 12개 이전기관 중 건강보험공단과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2곳만 지역대학과 협력사업에 나섰을 따름이다. 제주혁신도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혁신도시 조성에 나섰지만 여태 공공기관 이전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전대상 9개 기관 중 2곳은 올 연말이나 돼야 이전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전기관도 공무원연금공단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수기관 등이어서 산학연 연계사업도 기대난망이다.

대구 경북 울산 등 일부 혁신도시에서는 이전공공기관의 수도권중심 사업전략으로 지역사회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단순한 기념품이나 홍보물품도 쪼개기 수의계약수법을 동원해 수도권업체와 계약하는가 하면, 수해 원인을 놓고 혁신도시와 구도심 주민들이 충돌을 빚고 있다.

대구의 한 공공기관은 감사패와 달력 같은 소소한 물품까지 서울업체와 수의계약, 지역업체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경북의 한 기관은 칫솔세트 등 홍보기념품을 구입하면서 2,000만 원 이상 경쟁입찰이라는 규정을 피하려고 쪼개기 수법으로 경기 업체와 수의계약해 빈축을 샀다.

울산에선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 내습으로 인한 중구 태화시장 수해 원인을 놓고 혁신도시 때문이라는 구도심 주민과 기상이변 때문이라는 시행사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남영숙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은 “이제 막 하드웨어 구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원도심(구도심)과 신도시 사이에 물리적ㆍ심리적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원도심의 상태적 박탈감도 클 것”이라며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상생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서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수요조사를 하고 이를 토대로 접점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원도심의 쇠퇴는 외국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다양한 이전공공기관들이 개별 특성에 맞게 지역인재육성에 나선다든지 지역사회 전체 발전에 기여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라고 덧붙였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김천=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나주=김종구기자 sor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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