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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도 왔는데… 집 나간 ‘식격’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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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도 왔는데… 집 나간 ‘식격’을 찾습니다

입력
2016.12.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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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발간된 것은 하나의 신호다. 외래의 권위에 대한 맹종의 말이 아니다. 한국의 음식 문화가 산업의 차원에서 매력적으로 고려될 정도로 발달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식 문화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의 식당 풍경에는 여전히 수난이 이어진다. 식당도 서비스 직원도, 손님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발간된 것은 하나의 신호다. 외래의 권위에 대한 맹종의 말이 아니다. 한국의 음식 문화가 산업의 차원에서 매력적으로 고려될 정도로 발달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식 문화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의 식당 풍경에는 여전히 수난이 이어진다. 식당도 서비스 직원도, 손님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직장인 A씨는 노래방에 다녀온 것처럼 목이 쉬었다. 광활한 식당에는 손님이 가득했지만 감당할 만한 직원은 없었다. 쫓기듯이 뛰어다니며 음식을 나르는 직원들은 불러도 듣지를 못했다. 저 멀리서 빠르게 지나치는 직원을 볼 때마다 물 한 잔 얻어 마시겠다고, 맥주 한 잔 더 마시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팔을 흔들다 보니 진이 다 빠져서 음식이 코로 들어갈 지경이었다. 주인은 그런 꼴을 봤는지 못 봤는지 지인들이 몰려온 룸에 서비스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팔렸다.

‘순실 매너’ 즐비한 손님과 식당

B씨는 식사를 마치지 않고 식당을 박차고 나올 뻔했다. 옆 테이블에 음식을 통째로 엎은 어린 아이가 있어서 부모가 수습하느라 어수선해졌던 탓은 아니었다. 그 아수라장을 방치해 두고 저들끼리 하던 대로 음식이나 나르며 노닥거리는 직원들이 기가 막혔던 탓이다.

C씨도 한 레스토랑에 갔다가 눈 앞의 풍경에 입맛이 떨어져 식사를 마치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훤히 다 보이고 들리는 오픈 키친에서는 욕의 사육제가 열리고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요리사는 어리바리한 직원에게 험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요리사도, 직원도 바 좌석에 앉은 C씨 앞에 와서는 방긋방긋 웃었지만 C씨의 금요일 밤은 괴팍한 교육열에 이미 파괴됐다.

D씨가 갔던 식당에서도 사장님은 욕을 잘했다. 손님들 앞에서 망신 당해보라는 듯 직원에게 큰 소리로 욕을 날리며 꾸짖었다. 불편한 마음에는 직원도 한 술 더 떠 일조했다. 음식을 가져다 주며 사장 욕을 중얼거렸다. 혼잣말 치고는 너무 잘 들렸던 걸 보면 직원의 살해충동 고백이 사장은 못 들어야 하고 손님은 들어줘야 하는 호소였던 모양이다.

E씨 역시 한 식당에서 욕을 듣고 기분을 잡쳤다.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집’이다. 사장님은 손님에게 욕하는 캐릭터로 수십 년을 장사했다. 1990년대까지 유효했던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는 기실 대단히 눈치 좋은 프로페셔널 서비스 인력이다. 욕을 듣고도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밀당은 아무나 못한다. 다른 욕쟁이 콘셉트 식당에 갔던 F씨는 귀신 같이 기분 나쁘지 않은 선을 딱 지키는 욕지거리엔 허허실실 웃었지만 결국 다른 데서 기분을 망쳤다. 숟가락은 덜 씻겨 있었고 유리잔엔 고춧가루가 묻어 나왔다. 정겹거나 웃기지 않아도 좋으니 깨끗한 식기로 식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테이블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선 쉰내가 났다.

오픈키친의 화난 요리사는 식욕을 떨어뜨린다. 미쉐린 스타도 그 앞에선 무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오픈키친의 화난 요리사는 식욕을 떨어뜨린다. 미쉐린 스타도 그 앞에선 무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두 실화다. G씨와 H씨뿐 아니라 Z씨까지 이어지는 수난기는 생략한다. 밥 한 끼 맘 편히 맛있게 먹기가 힘들다. 비단 장사를 잘 못하는 식당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가보지는 않았어도 들어는 봤을 법한 유명 식당, 이름 대면 알 만한 요리사다. 어느 곳은 정감 가는 노포로 칭송되기도 하고 어느 식당의 요리사는 선한 미소의 스타 셰프로 포장되기도 한다. 하물며 망해가는 식당에서라면 더한 일도 놀랍지 않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러려고 식당에 온 게 아닌데

한국의 식당에서는 수난이 익숙하다. 외식문화는 창달해 가는데 서비스 문화는 그에 발맞춘 성장이 늦되다. 한국에서 서비스를 가장 잘해서 다른 호텔에서도 교육을 위탁할 정도라는 신라호텔의 조정욱 총지배인에 따르면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갖추는 진심 어린 배려의 자세”가 좋은 서비스의 정의다. ‘당연히 호텔이니까’라는 냉소는 부디 거두자. 어쩌다 운이 좋은 날은 6,000원짜리 백반집 사장님이나 4,000원짜리 국숫집 서비스 직원으로부터도 이런 서비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대체로 우리가 겪은 식당 수난사에서는 ‘잊지 못할 불쾌한 경험’과 ‘방만하고 무례한 서비스’가 더 많다.

A씨와 B, C, D, E, F씨는 쾌적한 식사를 위해 아무 것도 배려 받지 못했다. 되레 침해 당하기까지 했다. 대충 상냥하게 웃어 주면서 음식이나 나르면 그것이 서비스라 여긴다. 사장이나 직원이나 매한가지다. 더러 사장이 서비스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어도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최저시급을 조금 넘기는 돈을 받고 홀에 서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겐 사장님의 서비스 철학이 성가시다. 그런 것이 없을수록 ‘꿀알바’가 된다. 아르바이트생 대신에 성가셔도 견딜 풀타임 직원을 뽑자고 해도 인력이 없다.

사회 어느 구석을 봐도 서비스직은 선호 직업 축에 못 든다. 좋은 직업이 아니라 여기기 때문에 평생을 바라보고 머무는 인력이 점점 귀해진다. 여러 개 식당을 운영 중인 모 사장의 경험치로 가늠해보자면 “잠시 스쳐가는 직업으로 여기고 지나쳐가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다. 그는 경제 성장에 비해 더뎠던 음식 문화에도 탓을 돌린다. “좋은 서비스를 하려면 그런 서비스를 받았던 경험도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예약이 공짜인 한국의 외식문화는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주원인이다. 누구를 위하여 이 요리를 만들었던가. 게티이미지뱅크
예약이 공짜인 한국의 외식문화는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주원인이다. 누구를 위하여 이 요리를 만들었던가. 게티이미지뱅크

식당은 손님도 피폐하게 하지만 직원 역시 피폐하게 한다. C, D씨가 목격한 직원들이 그 경우다. 사용자가 고용인에게 급여를 줄지언정 자존감까지 사지는 않았다. 안팎으로 고되다 보니 식당 서비스직이 점점 더 기피직업이 돼간다. 요리 유학을 다녀온 요리사가 대접 받고, 와인 유학을 다녀온 소믈리에가 좋은 대우를 받는 가운데 서비스 유학을 다녀온 스타 서비스 직원이 없는 것만 봐도 여실하다. 외국에서 서비스직으로 경험을 쌓고 돌아와도 한국에서는 그 경력이 존중될 곳이 없다.

불혹을 눈앞에 둔 한 식당 매니저는 자신이 “운이 좋아 이제까지 존중 받으면서 일하고 대우도 잘 받는 편이지만, 주변을 둘러 보면 또래 중 마지막 남은 서비스직”이라 자조한다. 그의 또래 서비스 직원들은 진작에 ‘더럽고 치사해서’ 빚으로 식당을 차리고 요리사를 고용했다.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사용자와 고용인의 난에 새우등 터지는 것은 애꿎은 손님이다. 아주 어설픈 서비스를 견디며 밥을 먹거나, 눈뜨고 못 볼 갑을관계의 참사를 보며 덩달아 모멸감을 느끼거나.

노쇼 보려고 예약 받았나 자괴감

반면 식당 입장에서도 손님 때문에 수난이다. 특히 요즘 같은 연말이 그렇다. 송년회와 크리스마스라는 호재가 붙어 다니는 12월은 ‘대목’이다. 한 해 동안 적립한 평판에 비례해 예약이 줄을 잇는다. 평소 고전하던 식당이라도 대목의 혜택은 공평해서 예약이 들어온다. ‘노쇼(No Show)’라 부르는 예약 부도는 고질적인 문제다. 몇 해째 요리사들이 나서고 각종 매체도 입을 보태 의식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예약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타나지 않고 식당에서 걸려온 전화는 피하는 행태는 식당 입장에서 여전히 가장 고통스러운 유형이다. 뒤늦게 나타나도 문제고, 전화를 받아도 문제다. 테이블을 비워둔 시간만큼 식당에서는 기회비용에 손해를 본다. 단체 예약도 골치가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제 시간에 나타나는 사람이 절반이 되지 않고 예약한 인원이 다 모이기까지는 적어도 30분, 1시간이 지나야 한다. 기회비용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야 매한가지다.

가성비가 음식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됐지만, 그 가격 안에 서비스는 포함돼 있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성비가 음식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됐지만, 그 가격 안에 서비스는 포함돼 있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식당을 향한 ‘갑질’도 오래 묵은 문제다. 여성 직원을 향한 성희롱, 성추행과 나이 어린 직원에 대한 일방적인 하대, ‘을’일 수밖에 없음을 이용한 무리하고 고약한 요구 등 손님들의 추태를 아직도 목격하곤 한다. 손님은 식당에 있어 왕일 수 있겠지만, 왕에게는 그만한 품격과 자질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왕은 숙청 당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왕이 되려면 그만큼 베푸는 것도 많아야 하는데 식당에 등장하는 참 나쁜 왕들에겐 착취욕뿐이다. 점점 나아지지만 끝나지는 않았다. 전 세대의 일이라 치부해버리기엔, 불리한 입장에 놓인 대상을 향한 해코지와 지배욕의 유전자는 아직도 사멸되지 않았다.

단지 놓인 입장만을 악용하려는 손님들만이 식당에 수난을 안기는 것이 아니다. 음식 문화 자체도 식당에게 시련을 준다. ‘가성비(가격대 성능비)’라는 허울은 식문화를 끈질기게 폐퇴시키고 있다. 비용에 비해 성능이 좋다면 그야 물론 기쁘다. 그날의 식사는 기분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허나 싼 것은 싼 것, 비싼 것은 비싼 것이다. 식당과 손님에 두루 공평한 것은 돈 값을 하는 식사다. 5,000원을 지불했다면 5,000원만큼을 꽉 채워 받으면 그만이다. 5,000원짜리 식사에 1만원만큼의 가치를 요구한다면 그것 또한 약탈이다. 가성비를 요구하는 손님들의 마음 속엔 비싼 것을 싸게 취하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

세상에 별 사람이 다 있듯이, 모든 식당이 정직하고 공평하게 제 값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다. 가치에 비해 과도한 비용을 책정하고 눈속임으로 가성비를 꾸며내는(의외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양심적인 식당도 넘쳐난다. 5,000원을 내고도 2,500원짜리 가치밖에 받아가지 못했던 데 대한 손님들의 보상심리이기도 하다. 돈값을 하지 못한, 그리고 일부러 그러지 않은 식당들의 나쁜 경험들이 심은 피해의식은 손님들의 마음 속에 기생하며 가성비에 대한 맹신을 길러냈다. 피해를 보는 것은 돈값 하는 정직한 식당들이다. 모두가 가성비만 쫓다 보면 남는 것은 결국 가성비를 잘 꾸며낸 식당이 된다. 악순환의 끝에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있다.

비싼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또한 단지 배가 부르다고 해서 그 식사가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한국의 음식 문화는 아직도 싸고 양 많은 음식이 미덕으로 숭앙된다. 값어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최대한 합당한 재료, 최선치로 끌어낸 맛, 편리한 위치와 주차시설, 멋진 인테리어와 배려 깊은 서비스가 모두 음식의 값어치를 이루는 것들이다. 가성비는 그 모두를 종합해 따지기 시작해야 할 고차방정식이다. 함수들은 서로 얽히고 엮여 돌아간다.

연말을 앞두고 외식할 일이 부쩍 늘었다. 우리들의 식당 수난기를 허심탄회하게 돌아볼 때다. 이 시련이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식당과 서비스 직원, 손님, 수난의 주체들은 생각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그 토대가 되어야 한다. 식당의 마음, 서비스 직원의 마음, 손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맛 좋고 마음 편한, 가치 있는 식사 한 끼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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