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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열사병의 계절

입력
2018.07.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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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덥다. 병원은 노약자들의 건강을 위해 가장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열기를 뿜어내는 환자들이 내원하기 시작한다. 열사병의 계절이다. 이 맘 때면 온열질환에 대한 기사가 많이 보이고, 열부종, 열경련, 열탈진, 일사병, 열사병 등 비슷비슷한 단어도 늘 언급된다. 전부 비슷비슷하게 더위로 인해 발생하는 병이다.

먼저 열부종은 온열 때문에 인체 부위가 붓는 병이고, 열경련은 불수의적으로 사지 한 부분이 경련을 일으키는 병이다. 둘 다 심각하지 않고, 냉찜질을 하거나 전해질, 수분을 공급하면 나아진다.

일사병과 열사병은 한 글자 차이라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 본래 한자를 직역하면, 일사병은 태양을 맞아 생기는 병이고 열사병은 열을 맞아 생기는 병이다. 비슷한 뜻이고 실제로 혼용해서 쓰였다. 하지만 영어의 Heat exhaustion과 Heat Stroke을 각각 일사병(열탈진)과 열사병으로 번역하면서 혼란이 생겼다. 그래서 현재 의미로 일사병은 휴식을 취하면 회복이 가능한 온열질환이고, 열사병은 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는 심각한 온열질환이다. 영어에서도 탈진을 뜻하는 exhaustion과 뇌졸중을 뜻하는 Stroke의 경중과 개념이 혼란스러워 현재는 피로를 뜻하는 Stress로 바뀌었다. 한국어로도 이제는 일사병 대신 열피로나 열탈진이라는 단어로 치환되었다.

인간은 정온동물이다. 외부의 기온이 올라가면, 뇌의 시상하부에서 체온을 일정하게 맞추기 위해 말초의 혈액량을 늘려 열기를 배출하고 땀을 흘려 체온을 낮춘다. 이 과정에서 인체는 많은 양의 수분과 염분을 잃지만, 보충되지 않으면 열피로가 온다. 심한 갈증, 무기력, 어지러움, 구역질은 전부 열피로의 초기 증상이다. 체온도 상승할 수 있지만 40도까지는 상승하지 않는다. 의학에서는 당연한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일 때가 많다. 고산병은 높은 곳에서 내려가야 하고, 잠수병은 깊은 곳에서 올라와야 하고, 저체온증은 몸을 덥혀 주어야 하는 것처럼, 온열질환도 고온 환경에서 벗어나거나 체온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다. 땡볕에서 앞서 언급한 증상을 느낀다면, 즉시 수분과 염분을 보충하고 시원한 곳에서 쉬어야 한다.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체는 일정 이상의 외부 온도에 오래 노출되면 효율적인 열 배출이 불가능하다. 우리 몸에서 열기에 가장 민감한 것은 시상하부를 포함한 뇌, 척수 등의 중추신경계인데, 온열로 중추신경계가 손상되면 인체가 조절 기능을 상실해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상승한다. 이 단계가 열사병이다. 온도 조절계 자체가 열에 약해 온도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뇌의 손상이므로 의식을 잃어버리며,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할 확률이 50%나 된다. 수분이나 염분을 충분히 섭취한다고 해도, 노약자라서 인체의 조절 능력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오랜 시간 노출된다면 열사병이 온다.

인체는 불쾌감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그 환경에서 피하려고 한다. 이 기전이 워낙 강력해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노약자이거나 정신지체가 있는 사람들은 증상에 둔감하거나 조절 능력이 약해 빠른 시간에 열사병으로 진행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또한 신체는 건강하지만 열사병으로 내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일, 혹은 위계질서 때문에 땡볕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택배기사나 일용직 노동자, 군인, 위계질서 아래에서 훈련을 받는 운동부원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열사병 환자를 보고 있자면,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위험을 벗어나기 힘든지,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이 본능을 거스르고 볕 아래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질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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