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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등록 : 2017.11.15 14:20
수정 : 2017.11.15 14:21

[장정일 칼럼] ‘내로남불’ 시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등록 : 2017.11.15 14:20
수정 : 2017.11.15 14:21

올해 8월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계란을 기피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커피숍의 일회용 컵 사용이 줄어들었다는 재미난 통계는 어디서도 찾아보지 못했다.

계란을 먹으면 금세 복통을 일으킬 듯이 호들갑을 떤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계란 한 알보다 더 심한 유해물질을 뿜는 일회용 컵으로 태연자약하게 커피를 마신 것이다. 이런 이중성을 비웃기는 쉽지만, 일관성에 집착하면 오히려 죽게 된다. 화학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식재료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11월 6일 KBS 뉴스는 일부 지역의 쌀에서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살충제 성분이 허용 기준치의 14배나 초과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이중성도 일관성도 모두 나쁜 난관 앞에 서 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젊었을 적의 반여성적 행각과 저술로 인해 사퇴해야 한다고는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박성진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만은 사퇴하는 게 옳았다고 본다. 진보는 사회든 인간이든 바뀔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탁 행정관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박 후보는 장관이라는 공직을 맡기에 부적당한 허황한 사술(‘창조과학’)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여성운동가들은 탁 행정관을 끌어내려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바뀌는 모습을 전시하는 것’이 그보다 나은 본보기라는 것을 간과했다. 반성은 보이는 데서 해야지, 지리산에서 혼자 하게 해 봤자 사회에 돌아올 이득은 없다.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격은 물론 ‘무결점’일 테지만, 그렇다면 장관과 국회의원은 누가하나.

나는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준 게 천부당만부당했다. 이런 생각은 진보연양 하는 문인으로부터 ‘문학주의자’ 내지 ‘문학 기득권자(엘리트)’ 등으로 비난 받았다. 그런데 나를 비난했던 대부분의 인사들은 내가 무죄라고 두둔하는 조영남을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인다. 내가 ‘협소하고 전통적인 예술관’을 지지하는 일관성을 지녔다면 밥 딜런과 조영남 모두를 부정해야 했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예술은 확장’이라는 일관된 관점에 섰다면 밥 딜런과 조영남 모두를 옹호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관성을 가진 사람은 좀체 드물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박정희 재단)이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정면에 4m 높이의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이 박정희 동상에 반대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단지 신비로운 이들이 있다면, 서정주를 기리는 문학인들과 미당문학상과 관련된 시인ㆍ평론가들이다. 아마도 문학에는 문학의 논리가 따로 있을 테니, ‘친일과 독재자를 규탄한다’라는 일관성은 서정주와 박정희에게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지난주 한국일보에서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의 칼럼 ‘‘내로남불’, 자기의식의 몰락’을 읽었다. 김 교수는 지지 정권과 진영 논리에 따라 이중성(‘내가 하면 정의, 남이 하면 불의’)을 드러내는 지식인과 전문가의 행태가 보통 사람들이 참조할 상식이나 관행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은 어느새 타락해 버린 인간의 자기의식보다 훨씬 일관적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인공지능은 최소한 거짓말이나 빈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은 일관성이 문제다.

‘내로남불 시대’는 ‘국민 스승’ 따위의 대타자는 없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일찍이 ‘지식인의 종언’(문예출판사, 1993)에 썼듯이, 지식인이 권능을 과시할 수 있는 조건이었던 “총체적 통일성 혹은 보편성”은 몰락한 지 오래다. 이제 대중들은 그 자신들이 모순인 지식인들이 제공하는 세트 메뉴(일관성)를 군말 없이 받아먹을 것이 아니다. 각자가 고민하며 지혜로워져야 하고, 일괄 판단이 아닌 사안별 판단을 해야 한다. 탁현민과 박성진, 밥 딜런과 조영남, 서정주와 박정희에 대해 당신이 그 어떤 상이한 판단을 내리든 그것은 더 이상 모순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 리오타르는 보편적 이념과 총체적 고정관념이 사라진 시대에는 ‘날씬(sveltesse)’한 지성이 요구된다고 했다. 내로남불 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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