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부 조기 총선 강행 의지 속 추가로 돈 풀면 달러당 120엔 눈앞
TV 등 가전제품은 美·中 시장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인하 압박
지난달 말 일본은행의 기습적인 양적완화 확대에 따라 엔화 예상 환율을 연말 달러당 115엔 수준으로 대폭 상향 조정(엔화 가치 하락)했던 시장은 17일 일본의 3분기 마이너스 성장률 발표를 계기로 엔화 약세가 더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미 한계상황에 다다른 우리 수출기업들의 우려는 서서히 공포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내년 초 달러당 120엔 넘을 것”
전문가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돈 풀기를 여기서 중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아베노믹스의 실패가 수치로 입증되고 있지만, 되돌리기엔 그 상처가 너무 깊이 패였다는 것이다. 소비세 인상 연기나 조기 총선이 기정사실화되고 추가적인 돈 풀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경기부양에 정권 명운을 걸고 있는 아베 정권 입장에선 엔저 약세를 더욱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엔화 가치는 추가 하락 경로를 걸을 공산이 크다. 많은 전문가들은 내년 초 달러당 120엔 선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확대 기대는 조기총선 이슈와 함께 엔ㆍ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내년 초에는 120엔을 넘어서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물론 엔저가 지속되기는 하겠지만 추가 약세 폭이 크지는 않을 거란 예측도 나온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17일 엔ㆍ달러 환율이 117엔까지 치솟았다가 차익매물이 쏟아지며 115엔대로 떨어진 사실을 지적하며 “일본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시장에 선반영됐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달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확대는 소비세 인상을 통한 재정건전성 개선을 전제로 한 조치”라며 “소비세 인상 보류는 그 자체로는 엔화 약세 요인이 되겠지만 일본은행이 추가로 유동성을 풀기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日업체들이 가격주도권 쥘 우려”
수출기업들은 원ㆍ엔 환율이 이미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입장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수출기업들이 꼽은 손익분기점 환율은 100엔당 1,014.15원이었지만, 이날 원ㆍ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46.2원을 기록하며 사흘 연속 950원을 밑돌았다.
자동차 업계는 2000년대 중반 국내업체를 초토화시킨 엔저 악몽이 재현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2005~2007년 원ㆍ엔 환율이 100엔당 760원대까지 떨어져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자동차산업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2006년 국내 자동차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2.85%로까지 하락한 반면, 도요타는 당시 연간 영업이익 증가분 가운데 엔저효과로 인한 금액이 3,000억엔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해외에서 일본 가전업체와 경쟁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엔저 공세로 마진이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는 국내 대기업이 일본업체보다 월등히 경쟁력이 높지만 TV 등 일부 상품은 품질이 엇비슷하기 때문에 일본 제품의 가격이 내려가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본 소니와 샤프 등은 연말 특수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 등에서 큰 폭의 가격할인으로 시장점유율을 조금씩 높여가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당장의 피해보다는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들이 가격결정 주도권을 쥐고 시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업체 관계자는 “내년에 바이어들과 제품 가격 산정이나 재고물량 등을 두고 협상할 때 엔저로 경쟁력이 강화된 일본업체가 가격을 내릴 경우 우리도 가격인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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