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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밥짓기] 고독사 가장 많은 50대 독거남… ‘나비남’을 구하라

입력
2017.12.23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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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년째 독거생활 50대 강명진씨

양천구 ‘나비남’ 지원대상 돼

요리교실 다니고, 신용회복 상담

#2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멘토 역할

민관합동 33개 지원사업 벌이고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

#3

고독사 비율 50대 29%로 최다

중년 남성, 숨으려는 심리 강해

지자체가 자활의지 다질 수 있게

음식과 건강관리 기회 제공을

9년간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다. 낮에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서울 양천구청의 50대 독거남 지원사업인 ‘나비남 프로젝트’를 통해 겨우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 강명진씨. 12일 서울 양천구 신월1동 자택 부엌에서 강씨가 밥상을 차리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9년간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다. 낮에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서울 양천구청의 50대 독거남 지원사업인 ‘나비남 프로젝트’를 통해 겨우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 강명진씨. 12일 서울 양천구 신월1동 자택 부엌에서 강씨가 밥상을 차리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영하 12도의 강추위가 몰아쳤던 12일, 서울 양천구 신월1동의 어느 반지하집. 이혼 후 14년째 독거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강명진(52)씨가 끼니를 챙기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섰다. 냉장고에서 굴무침, 오징어볶음, 김치를 꺼내 작은 소반 위에 올리고 밥통을 열어 전날 지어놓은 밥을 푼다. 반찬은 서울시 서부여성발전센터에서 한 달에 한번씩 20여명의 독거남들이 모여 요리를 배우는 ‘집밥이 쉬워졌어요’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온 것들. 현관문을 열 때마다 휙휙 강풍이 몰아쳤지만, 따스한 밥 한 끼 정도는 이제 얼마든지 혼자서 챙겨먹을 수 있다. 소주 한 잔, 커피 한 잔으로 식사를 때우던 날들이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강씨는 서울시 양천구가 50대 독거남 고독사 예방을 위해 실시 중인 ‘나비남 프로젝트’의 지원대상자인 404명의 나비남 중 한 명. 나비남이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의미의 50대 독거남을 일컫는 말로, 이들의 사회적 고립과 복합적 문제를 민관이 함께 해결하고 도와주기 위한 지원체계가 나비남 프로젝트다.

몇 번의 불운이면 누구나 나락으로

박스 제조공장을 운영하던 강씨는 사업 부도로 빚쟁이들에게 쫓기면서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해결사들이 찾아와 부인과 두 아들 앞에서 협박을 일삼는 험한 꼴이 날마다 벌어졌다. “새끼들이랑 마누라는 보내고 혼자 고통 받자”는 결심으로 이혼한 후 일용직을 전전했다.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 지 서너 해. 대형 교통사고를 냈다. 봉고차에 일용직 인력들을 싣고 달리던 한겨울의 살얼음 낀 올림픽대로에서 차가 미끄러졌다. 가해차량이 된 강씨의 차에 상대편 차량 탑승자가 숨졌다. 강씨도 손가락 하나가 잘리고 이빨이 다 부서졌다.

6개월 간 병원신세를 진 후 나온 세상은 암흑이었다. 이보다 더 어두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보다 더한 어둠이 있었다. 여전히 빚쟁이들은 그를 쫓아다니고, 장애를 입은 그는 더 이상 일용직으로도 일할 수 없게 됐다.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야밤과 새벽에만 집밖으로 나섰다. 신문이나 우유를 배달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낮에는 숨 죽인 채 집안에 숨어 햇살과 싸웠다.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 은둔자의 유폐된 삶. 그렇게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는 몇 번의 불운이면 충분했다.

50대 독거남 강명진씨가 혼자 차린 밥상. 이제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집에서 챙겨 먹는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50대 독거남 강명진씨가 혼자 차린 밥상. 이제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집에서 챙겨 먹는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왜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몸은 이렇게 됐고, 가족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낮에 집에 혼자 누워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소주 한 잔씩 안 할 수가 없었지요.”

9년간 아무와도,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던 강씨에게 올 초 양천구의 우리동네 주무관과 복지통장이 찾아왔다. 구청이 올해 주력사업으로 시행에 들어간 ‘나비남 프로젝트’의 대상자 발굴을 위해 전수조사를 나온 것이다. 복지플래너와 방문간호사의 2차 심층조사를 거쳐 ‘나비남’이 된 강씨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자활할 수 있도록 양천구의 다양한 정책지원을 받는다. 멘티-멘토 관계를 맺은 박선종 양천구 신월1동 복지협의체 위원장과 주 1회 만나 멘토링을 받고, 신용불량 회복을 위한 법적 절차도 상담받는 중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요리교실도 나간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 생활하려고 해요. 자신감이 좀 생겨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죠. 동사무소도 가고, 보건소도 가고, 구청도 가고, 멘토님 일하시는 데 가서 같이 식사도 하고요.”

강씨의 집 침대 발치에는 커다란 곰돌이 인형이 하나 놓여있다. 누가 길에 내다버린 걸 가져다 깨끗이 목욕시켜 함께 지내는 반려인형이다. “곰돌아, 오늘은 내가 구청을 갔는데 말이야…” 하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할 정도로 삶에 의지가 되는 식구다. 고독사 같은 단어는 더 이상 그의 사전에 없다.

왜 50대 독거남인가?

고독사 하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상은 노인이다. 하지만 통계는 전혀 다른 실상을 보여준다. 고독사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은 50대이며, 성별 비중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높다. 국가가 근로능력이 있다고 간주하는 만 50~64세 남성은 취약계층이 될 경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다. 노인기초연금이라도 받으려면 65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고독사는 이들을 빈번하게 공격하지만, 50대 독거남의 비극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다.

고독사는 현재 정확한 학문적ㆍ법적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정확한 통계도 작성된 것이 없다. 고독사 통계로 인용되는 유일한 자료는 2014년 ‘한국인의 고독사’를 방영한 KBS 파노라마팀이 작성한 것이다. 2013년 경찰의 변사자에 대한 현장출동 일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무연고 사망자 처리보고서 총 3만2,857건을 분석, 고독사에 해당하는 사례를 분석하고 정리한 자료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고독사 발생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50대로 29%에 달했다. 이어 60대가 17.9%였으며, 40대가 17%, 70대가 9.1%가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대도시가 고독사 발생비율이 높았다. 서울이 25.45%로 고독사가 가장 많았고, 경기가 20.26%로 뒤를 이었다.

성별로는 남성이 대부분이다. KBS 자료를 토대로 서울시복지재단이 지난해 발간한 ‘서울시 고독사 실태파악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성별 고독사 발생비율은 여성이 13%인 데 반해 남성은 85%로 6.5배나 높았다.

고독사란 가족, 이웃, 친구간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혼자 살던 사람이 홀로 임종기를 거치고 사망한 후 방치되었다가 발견(통상 3일 이후)되는 죽음으로, 방치된 자살자도 포함된다. 서울시의 경우, 확실한 고독사 사례는 162건으로 이틀에 한 꼴로 발생하며, 의심사례는 연간 2,181건으로 하루 6건씩 발생한다. 확실사례 중 남성은 137건, 여성은 21건이다.

이렇게 해서 처음 도출된 것이 ‘뜻밖의 고독사 위험집단’ 50대 남성이다. 사회복지체계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기 직전의 연령대로 혼자 살며, 지병이 있고, 일용직 근로자이거나 무직이며, 이혼과 실직, 질병 등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집단이다.

“여성들은 생존 본능이 강해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편이죠. 하지만 이 연령대 남성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폐쇄적입니다. 사업실패나 이혼 같은 일을 겪으며 생의 마지막 기로에 서는 시기인데 복지정책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죠.” 정창영 양천구 자치행정과장은 “자살도 많고 혼자서 술 먹으며 세월을 보내다 고독사하는 그 시기가 딱 50대”라며 “제도권 밖에 있는 50대 독거남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주는 정책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려인형 곰돌이와 나비남 강명진씨. ‘나비남영화제’에 출품한 영화를 만들 당시 착용했던 이름표가 화장대에 걸려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반려인형 곰돌이와 나비남 강명진씨. ‘나비남영화제’에 출품한 영화를 만들 당시 착용했던 이름표가 화장대에 걸려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자활 위해 반찬 지원부터 요리강습까지

50대 독거남의 자활을 돕기 위한 양천구의 나비남 프로젝트는 올 2월 독거남 전수조사로 시작됐다. 주민등록상 1인 가구로 조사된 50~64세 남성 6,841명 중 현장조사를 통해 실제 지원이 필요한 독거남 393명,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타 시군구에 등록돼 있으면서 실거주(노숙 포함)는 양천구에서 하는 독거남 11명을 합쳐 총 404명의 ‘나비남’을 발굴했다. 발굴 과정도 쉽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에 죽어도 도움은 못 받겠다’면서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남성들도 적잖았다. 고독사로 갈 위험이 가장 큰 집단이다. 양천구는 여전히 조사를 거부하는 독거남을 설득해 현재 80%까지 조사를 완료했으며, 문제 상황시 위치추적, 강제 개문(開門) 등이 가능하도록 소방서 및 경찰서와 협약도 맺었다.

나비남 프로젝트는 전수ㆍ실태조사인 1단계 ‘세상과 만나다’를 통해 발굴된 404명의 나비남을 대상으로 2단계 관계맺기-3단계 문제해결-4단계 희망찾기 과정으로 진행 중이다. 95명의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를 멘토로 구성해 나비남들과 일대일 결연 관계를 맺어 천천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 연결망을 복구하는 과정이 2단계다. ▦절대 함께 술 마시지 않는다 ▦동정하지 말고 공감한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준다의 3원칙을 갖고 운영하는 멘토단은 주 1회 멘토와 멘티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가장 중요한 3단계 문제해결은 민관 합동의 총 52개 사업으로 이뤄졌다. 양천구 17개동이 각각의 동 특성에 맞게 총 33개의 나비남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반찬(사랑찬) 지원사업이 가장 많다. 이발 목욕 쿠폰 지원, 치과 검진 및 치료비 지원, 건강검진, 생필품 구매 쿠폰, 요리실습에 LED등 교체사업까지 있다. 형광등은 어둠침침한 조명으로 자살유도 부작용이 있어 자연광과 유사한 LED조명으로 교체하는 사업이다. 독거남의 특성상 반지하 거주가 많기 때문에 긴요하다고. 7월부터는 한빛복지관에 복지, 건강, 고용, 금융 상담 서비스를 위해 나비남 전용공간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공동체로 복귀하고 도움을 받는 멘티에서 도움을 주는 멘토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숨으려는 50대 독거남, 중점 관리 필요

지난달 트위터에선 50대 남성에 집중해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이 사업에 대한 일부 여성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기초 생활능력을 갖추지 않고 살아온 남성의 가부장적 특권을 국가가 복지정책의 형태로 연명시키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실제 52개 지원사업 중 자활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혼밥 차려먹기 및 간담회’와 ‘집밥이 쉬워졌어요’ 두 개뿐인 반면 반찬 및 도시락 제공 사업이 14개나 됐다. 사랑찬 사업은 동별로 반찬가게를 서너 곳 정도 지정해 나비남들이 개인별 한도금액 안에서 반찬을 가져갈 수 있는 서비스이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 한해 배달봉사를 해주고 있다. 도시락 제공은 매년 5월 가정의 달마다 양천아이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기초생활수급권자, 한부모가정,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올해 나비남도 포함시킨 것이다.

양천구 관계자는 “여성들은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고, 한부모 가정이나 모자가정 지원사업을 통해 아동을 지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굴되는 등 독거남성과는 양태가 다르다”며 “올해 사업 포인트가 50대 남성일 뿐 여성지원사업은 그동안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자녀를 키우는 중년여성들은 친밀한 사회관계망을 통해 다양한 복지 정보를 얻고 적극적으로 관공서의 문을 두드리는 반면 중년의 독거남들은 숨으려고만 하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를 않기 때문에 중점 관리 대상이라는 것이다. 일자리 측면에서도 50대 여성은 저임금이나마 다양한 서비스직에 취업 가능하지만 50대 남성은 일용직으로도 취업이 어렵다. 사회의 잉여로 전락하기 쉬운 구조다. 정창영 양천구 자치행정과장은 “50대 독거남이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돕고 싶어도 법적 규정이 없어 어려울 때가 많다”며 “이 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자활의 기술을 익히는 것은 자활의 의지를 갖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자활의 의지는 당장의 생존을 해결하지 않으면 도모할 수 없다. 나비남들은 이미 독거생활이 수년째이기 때문에 초보적인 살림 기술은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활의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보다 건강한 음식과 건강관리 기회를 지자체가 제공하는 것이다. 국가가 위험에 노출된 국민의 구조에 나서는 일은 당연한 책무다. 내년도 양천구 업무계획에는 50대 여성 1인 가구에 대한 조사 및 지원 사항도 보고돼 있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공동체 문화가 실종되고 각자도생의 사회가 된 오늘날, 고독사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한 모두의 문제”라며 “양천구에서 시작된 50대 독거남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나비효과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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