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판사의 마음이 심란해지는 계절이 있다. 바로 요즘처럼 대통령 특별사면을 앞두고 있을 때다.
피의자 인권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를 수사해 기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1도 2부 3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수사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조언은 ‘일단은 도망가라. 불려가면 무조건 부인하라. 그래도 안 되면 백(배경)을 동원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게 며칠 밤샘 조사해 어렵게 기소한 피의자가 하루 아침에 풀려나니 허탈한 마음이 들 수밖에. 방대한 공판기록을 쌓아가며 실체 판단과 적정 양형을 놓고 불면의 시간을 보냈던 판사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법조인들은 근본적으로 봉건 군주제 냄새가 물씬 나는 사면제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면이나 감형 같은 특혜 조치는 형사사법 체계를 일거에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사면 심사는 형사소송 절차와 같은 엄격함이 결여돼 있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역대 특사 때마다 ‘보은 사면’, ‘끼워 넣기 사면’ 등 사면권 남용 논란이 인 것은 기본적으로 사면 심사가 조선시대 ‘원님 재판’ 같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논란의 사면 카드를 빼 들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사면권 행사를 자제해온 편에 속한다. 아직까지는 지난해 1월 생계형 특별사면을 실시한 것이 전부다. 또 두 번이나 사면을 받아 특혜 시비를 불러왔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사면 로비에 대해 직접 수사 지시를 내릴 정도로 사면권 행사에 엄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사면권 남용 논란이 사라질까.
안타깝게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벌써부터 사면 사건 수주로 로펌 업계가 들썩거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사면 시즌이 되면 대형 로펌에는 ‘사면 자문’ 의뢰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말이 자문이지 실은 사면 대상에 포함시켜달라는 노골적인 청탁이나 다름 없다. 사면은 대통령만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이다 보니 사면 심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웬만한 변호사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형 로펌에 소속된 검찰 출신 거물급 전관의 몸값이 올라간다. 의뢰인이 보는 앞에서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국장,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사면 대상으로 검토해달라는 전화 한 통이라도 넣으려면 고검장급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이들은 전화 한 통으로 수억원의 수임료를 챙기며, 만에 하나 성공하면 성공보수로 또 수억원을 챙긴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물론 사면 자문이 실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된 것은 없다. 의뢰인의 절박함을 이용한 한편의 사기극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면의 특성상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구조라 반대로 법무부가 특정 대상자를 검토해달라는 건의를 청와대에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면권 행사의 이면에서는 이처럼 요지경 세상이 펼쳐진다.
물론 사면권은 국민화합이나 국가발전 같은 목적을 위해 행하는 고도의 통치행위이며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특권이다. 법조인들도 그 존재와 기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성완종 전 회장의 사례는 돈으로 면죄부를 사려는 욕망이 도처에 존재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두 번째 사면을 받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어떻게든 줄을 대려고 혈안이었던 성 전 회장의 모습은 음지 속에 숨어 있던 치열한 사면 로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광복 70주년 사면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니 지금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에서는 사면 심사가 한창일 것이다. 이왕 사면권을 행사하기로 했으니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사면 심사를 하는 것이다. 실은 검사와 판사도 사면한다고 무조건 ‘본전’ 생각에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법의 이름으로는 관용을 베풀 수 없었지만 사면을 통해서라도 은전을 받을 때 마음의 부담을 덜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그 은전이 국민정서를 거스르는 명분 없는 사면이 아닐 때에나 가능한 얘기다.
김영화 사회부 기자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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