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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촛불혁명 1년, 유산과 과제

입력
2017.11.05 14: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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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의 가장 빛난 순간으로 기록될 만

참여와 심의의 새 민주주의 가능성 제시

촛불정신, 안정된 제도로 영구 보존 해야

지난날 29일 촛불혁명 1주년을 맞았다. 정부 부처의 적폐청산과 공영방송 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첨예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사법처리에 대한 사회 일각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으며, 계속되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실험으로 안보위기가 심화되었음에도, 한국 사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과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

더구나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공사중단을 둘러싼 숙의민주주의 실험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났고, 올해의 경제성장률도 예상했던 것보다 높은 3.1% 정도를 기대하게 되었으니, 출범 후 6개월이 지난 문재인 정권이 여전히 70% 정도의 높은 지지를 누리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인사와 안보 분야에서 다소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앞당겨진 정권 인수로 운신의 폭이 크지 않았던 상황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정성 있게 노력한 모습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변화의 근원에는 촛불혁명이 있다. 촛불시민은 헌법 1조에 천명되어 있는 국민주권 원리를 생생한 실체적 경험으로 구현시켜, 문재인 정권이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도록 채찍질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혁명은 먼 미래에서 되돌아보더라도 한국 헌정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될 만하다. 작년 10월 말부터 올해 4월까지 촛불시민이 보여준 성숙한 태도와 절제된 행동은 이미 민주적 가치와 덕성을 체현한 것으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시민들이 오히려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위헌과 불법을 일삼은 정권에 대한 분노를 질서정연하고 합법적인 저항으로 승화시켰고, 불의한 사회구조와 관행에 세련된 풍자와 해학으로 맞섰으며, 촛불을 특정 이익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준엄히 꾸짖었고, 촛불의 대의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과잉 행동과 요구를 절제하는 등, 대규모 시위들에 공통적인 적개심과 폭력성 및 무절제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아가서 촛불혁명 내내 진행된 토론과 숙의는 참여와 심의가 통합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촛불혁명의 요구에 비춰보면 지금의 변화는 너무 느리고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유산은 매우 깊고 광범위할 것이다. 새로운 체제의 건설은 구체제 옹호자들의 집요한 저항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한 만큼 일시적인 지체나 퇴행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의 시대에는 그 어떤 집권 세력도 촛불이 요구했던 최소치, 즉, 위헌ㆍ불법 행위와 반민주적인 통치로의 회귀를 꿈꿀 수 없게 됐다. 사회구성원들을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하지 못할 것이며, 소통과 협치를 앞세우지 않으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지독한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구체제의 마지막 지배세력이 민주적 가치와 법치를 내세우며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 비난하는 모습에서 그런 변화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적폐의 온상이었던 집단이 민주적 소통과 협치를 부르짖고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제 촛불혁명은 촛불정신으로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형체가 없는 촛불정신은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어 언젠가 소멸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촛불정신을 튼튼하고 안정된 제도 속에 안치시켜 영구히 보존해야 할 이유다. 제도화의 핵심은 국민이 이 나라와 정치권력의 주인인바, 필요할 경우 언제라도 정치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헌법의 민주적 개방성을 높이는 데 있다.

가능하다면, 아니 반드시, 헌법 개정 과정의 민주성도 최대한 제고시켜야 한다. 헌법의 민주적 개방성은 개헌 과정 자체가 시민사회에 개방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촛불정신이 정치ㆍ경제ㆍ사회 제도들의 공정한 운용에 필요한 공공문화로 흡수되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회적 자본으로 뿌리를 내린다면, 촛불정신은 우리의 헌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 속에서 불멸성을 얻게 될 것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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