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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냐고 묻지 마세요, 달콤한 우정 뽐내는 중이니까

입력
2015.07.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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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맞춰입는 젊은 여성 '트윈룩' 유행… 친구와 친밀감 확인에 하나 되는 맛

우정 사진 찍어 SNS에… 예쁘죠?

페이스북 페이지 회원만 6만명 넘어

트윈룩(Twin+Look)족

-이성이 아닌 동성 친구와 같은 옷을 맞춰 입는 20~30대. 개성 보다 우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들이 주로 트윈룩을 즐긴다. 경쟁보다 조화와 연대에서 가치를 찾는 게 특징. ‘우정사진’을 찍어 소속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밀짚모자에 검은색 체크무늬 원피스. 신발까지 검은색으로 맞춰 신은 두 여자가 팔짱을 끼고 숲 속을 걸어가는 모습이 다정하다. 어린 쌍둥이가 아니다. 대학생 김아늠 이영현(23)씨는 옷을 맞춰 입고 최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한창 튀고 싶고 패션에 민감한 여대생이 보란 듯이 같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다니. 쑥스럽거나 창피한 기색은 전혀 없는 눈치다. 한 두 사람의 유별난 ‘코스프레’? 아니다. 여대생 이혜원(21)씨도 세 명의 여자친구와 똑같은 핑크색 줄무늬 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한결 같이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면서도 “20~30대 사이 트윈룩이 유행이라 옷을 맞춰 입었다”고 입을 모았다.

트윈룩은 쌍둥이를 뜻하는 트윈(Twin)과 스타일을 뜻하는 룩(Look)을 합친 말로, 옷을 비슷하게 맞춰 입는 걸 일컫는다. 일상복뿐만 아니라 한복과 웨딩드레스도 맞춰 입는 추세다. 20~30대 네티즌 사이 트윈룩은 하나의 놀이가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 트윈룩 페이지에는 6만 여명이 가입해 서로 찍은 트윈룩 사진을 공유하며 얘기를 주고 받는다. ‘트윈룩 바람’은 패션가에도 불었다. 같은 모양에 특정 장식만 바꿔 함께 신는 트윈슈즈도 시장에 나와 인기다. 해외 수입패션 잡화 회사 스타럭스 임아름 주임은 “트윈룩의 유행으로 트윈슈즈가 전체 매출의 20%를 점할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유행의 첨단을 걷는 에이핑크 등 걸그룹도 트윈룩 콘셉트로 화보를 찍었다.

‘오늘 무슨 옷 입지?’. 누구나 매일 아침 한 번쯤 하는 고민이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자신도 달라진다. 멋과 개성에 민감한 젊은 여성이라면 고민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친구가 산 옷은 일부러 사지도 않았고, 갖고 있더라도 피해서 입었다. 같은 옷을 입는다 해도 중ㆍ고등학교 때 잠깐 우정을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그랬던 이들이 다 큰 성인이 돼서 변한 이유는 뭘까. 친구와 같은 옷을 맞춰 입길 즐기는 20~30대 ‘트윈룩족’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개성보다 우정이다. 친구와 같은 옷을 맞춰 입고 거리에 나가면 나만의 개성은 죽어도 친밀감은 두터워지기 마련. 트윈룩족은 같은 옷을 입는 행위를 “우정 확인의 수단”으로 여긴다.

고등학교 친구 네 명과 함께 트윈룩을 즐겨 입는다는 대학생 이아현(21)씨는 “길거리에서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안 창피하나’그런 생각이 들어 남자친구와 커플티도 잘 안 입었다”며 “그런데 트윈룩이 유행이기도 하고 뭔가 친구들과 하나가 된 느낌이 들어 자주 입는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한복을 맞춰 입은 프리랜서 영어 통번역가 김가영(28)씨도 “연애 5년 하고 결혼도 했는데 지금 남편과 커플룩을 입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하지만 트윈룩으로 친구와의 우정을 확인하고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사귀는 남자친구와도 같은 옷을 잘 입지 않는데, 여자친구와는 거리낌 없이 입을 만큼 우정의 확인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친구와 옷을 맞춰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우정을 보여주는 데도 적극적이다. “옷 맞춰 입고 찍은 사진이 예뻐서”라는 자기만족도 있지만, 이렇게 끈끈한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주변 사람에게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인맥 자랑을 하는 게 트윈룩족이다. 이아현씨는 “‘우리 우정이 이정도’라는 걸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어서”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들은 직접 전문가를 찾아 ‘우정 사진’을 찍는 열정을 쏟기도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친분을 이어온 대학생 임소영(23)씨와 회사원 김수지(23)씨는 한복을 트윈룩으로 맞춰 입고 사진 스튜디오로 가 우정사진을 찍었다. 우정 및 셀프 웨딩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가 오민경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트윈룩을 입고 우정촬영을 부탁하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며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두 배 가량 된다”고 전했다.

청소년이 아닌 20~30대 남성들이 스튜디오로 가 우정사진을 찍거나 트윈룩을 맞춰 입고 거리로 나서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여성이 트윈룩을 주로 즐긴다는 데 집중해 의미를 찾았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하면서 여성에게도 우정을 바탕으로 한 인맥관리 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남성은 우정을 운동이나 술과 같은 활동으로 확인한다면, 여성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정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래서 트윈룩으로 자연스럽게 20~30세대가 지닌 관계의 결핍을 해소하면서 소속감까지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봤다.

트윈룩족의 등장을 경쟁 심화에 따른 ‘피로사회 후유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양영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대는 개인화와 다양화가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며 ‘나는 튄다’라는 가치 몰두에 힘썼는데, 이에 지친 현상이 트윈룩이라는 재미있는 반발로 나타난 듯 하다”고 분석했다. 트윈룩족은 취업난이 심각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김종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혼자 있기는 불안한 가운데 동성 친구끼리의 부담감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애착관계를 형성하려고 하니까 트윈룩족이 등장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박준호인턴기자(동국대 불교학과 4년)

장윤정인턴기자(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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