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는 곳마다 대중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 깊은 울림을 낳고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각별했다. 지난 14일 서울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손을 잡고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며 위로했던 교황은 방한 일정 내내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을 이어갔다.
교황은 어제 오전 공식일정에 앞서 서울 궁정동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에게 세례를 했다. 15일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직전 세월호 유족 및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씨가 불쑥 꺼낸 세례 요청을 흔쾌히 들어준 것이다. 교황은 이씨와 고 김웅기군의 부친 김학일씨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38일간 안산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 다시 대전까지 800여㎞를 짊어지고 걸었던 나무 십자가를 전하자 바티칸으로 가져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황은 이날 유족들이 건넨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하며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 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기도했다. 교황은 16일에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차에서 내려 ‘We want the truth(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라는 플래카드를 든 세월호 유족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얘기를 들어줬다. 34일째 단식 중인 고 김유민양의 부친 김영오씨가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청하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유족들은 “교황을 만난다고 당장 특별법이 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 크나큰 위로가 됐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교황의 방한에 맞춰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청원이 봇물을 이루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는 것을 마땅찮아 하는 이들도 있다. “교황이 무슨 마법사냐”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고통과 상처가 그만큼 크고 깊다는 것임을 안다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옳고, 자성의 가장 큰 부분은 정치권의 몫이다. 세월호 특별법 표류를 놓고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은 이제라도 유족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
교황은 17일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 강론에서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간청에 연민과 자비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기간 내내 ‘낮은 데로 임하는’ 행보를 통해 가톨릭 신자나 청년만이 아니라 한국민들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 말이 아닐까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일정 따라잡기]
☞ 첫 날① 프란치스코 교황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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