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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우리는 갤럭시라도 포기할 수 있을까

입력
2016.10.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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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노트7. 삼성전자 제공
갤럭시노트7. 삼성전자 제공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그룹 인터브랜드가 올해 초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가운데는 독일 명차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아직은 3개뿐(삼성 7위, 현대차 35위, 기아차 69위)인 한국의 대표 브랜드들 사이로 벤츠(9위), BMW(11위), 아우디(36위), 폭스바겐(40위), 포르쉐(50위) 등이 상위권에 빽빽하다. 하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수십년 전부터 익숙했던 독일 명차들 틈새를 새로 성장한 우리 기업이 파고든 게 오히려 대견하달까.

그런 독일이 벤츠, BMW 등 국가대표 브랜드의 명성을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다는 선언을 내놓았다. 슈피겔 등 독일 언론에 따르면, 의회의 한 축인 연방상원은 ‘늦어도 2030년부터는 경유, 휘발유 등 내연기관 사용 승용차의 신규 등록을 불허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지난달 말 채택했다.

가솔린, 디젤 엔진을 달고 세계를 장악 중인 주력 상품을 불과 14년 뒤부터는 아예 팔지 못하게 하자니. 우리로 치면 삼성의 갤럭시나 현대차의 쏘나타를 십수년 후부터 판매 금지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앞서 노르웨이,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 뉴스가 독일에서 나왔다는 게 놀랍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만든 내연기관의 원조다. 자동차 관련 제품이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여전히 ‘자동차의 나라’이기도 하다.

결의안의 의도는 명확하다. 더는 환경을 해치는 상품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슈피겔은 “작년 체결된 파리 기후협약에 따라 독일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95%까지 줄여야 한다”고 그 배경을 전했다. 독일 의회는 벤츠,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회사들에게 지금의 기득권은 깨끗이 포기하고, 친환경 차로 새 출발할 것을 요구한 셈이다.

환경을 최우선시하는 녹색당조차 “깜짝 놀랐다”고 할 만큼 독일은 발칵 뒤집혔다. 독일 제조업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차지하는 자동차 업계(마티아스 비스만 독일 자동차산업협회장, “가능하지도, 강제해서도 안 되는 소리”)는 물론, 연방 정부(알렉산더 도브린트 교통부 장관)도 “실현되기 어려운 걸 기대하게 하는 건 잘못”이라고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자동차 브랜드들이 밀집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녹색당이 연정을 주도하고 있음에도, 주 산업이 받을 충격을 우려해 상원 결의안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을 만큼 진통도 컸다.

이번 결의안이 진짜 현실이 될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결의안은 결의일 뿐, 법적 효력이 없다. 각 주 선출직 공무원들로 이뤄진 독일 상원은 하원의 입법에 일부 비토권만 행사할 수 있어 권한도 제한적이다. 대대적인 반발로 미뤄 하원이 곧장 입법에 나설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결의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독일이 ‘미래를 위해’ 전력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원자력발전마저 과감히 포기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독일 정치권의 집단 행동은 지금 한국의 모습과 너무 대비된다. 태생적으로 수익이 우선인 기업들이야 거기서 거기라 치자. 적어도 독일 정치 지도자들에겐 비록 국가 주력산업을 스스로 포기할 지라도 여야가 함께 미래를 위한 ‘리셋’을 요구할 용기가 있다.

미래를 위해, 더 늦기 전에 한계산업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고 여야가 공히 목소리를 높였던 한 해가 어느덧 저물어 간다. 최고로 잘 나가는 상품도 내려놓자는 나라가 있는 반면, 우리는 당장 하루하루 위태로운 산업도 어찌할 줄 몰라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설사 그게 갤럭시, 쏘나타라도 포기해야 한다고 우리 정치권은 나설 수 있을까. 당장 우리에겐 독일 의회가 염려하는 환경보다 훨씬 치명적일 인구절벽이 눈 앞에 있는 데 말이다.

김용식 경제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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