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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물고문 부활

입력
2017.02.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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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견디지 못해 헛구역질을 해 댔습니다.… 살가죽에 달라붙은 그 비명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멱이 따진, 흐느껴대는, 낮고 음산한 울려 퍼짐이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했던 고 김근태 의원이 쓴 책 ‘남영동’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통성 없는 독재ㆍ군사정권은 가짜 공안사건을 만들어 내려 물고문을 남용했다. 독립운동가에게 각종 고문을 자행했던 친일경찰 노덕술의 고문기술이 이근안 등에게 전수됐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거전 내내 물고문 부활을 공언했다. 급진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에 맞설 비장의 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최근 국토안보부를 방문해서도 물고문 부활을 거듭 역설했다. 그는 “IS가 중세 이후 누구도 듣지 못했던 짓을 하는데, 내가 ‘워터보딩’(water boardingㆍ물고문)에 끌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워터보딩은 얼굴에 천을 씌우고 물을 부어 호흡을 힘들게 하는 고문 방식. 남영동 인간백정들도 김 의원을 벌거벗긴 뒤 얼굴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부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기관 최고위 인사들에게서 고문이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물고문을 금지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마지막 국가안보 연설에서 “물고문을 해서 좋은 정보를 얻었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며 테러와 싸우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가치를 지켜 달라고 트럼프에게 호소했다. 근대 형법의 초석을 놓은 체사레 벡카리아는 고문이 진실 규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라크전에 참여했던 미군 정보장교도 “폭력적인 심문 방식은 거짓정보를 이끌어 낼 뿐”이라고 증언한다.

▦ 고문을 경험했던 시인 황지우는 “지옥이 지옥인 것은 그곳에는 죽음마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다. 역시 고문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던 시인 고은은 “고문을 당해 보면/ 인간이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고문하는 자도/ 고문당하는 자도/ 깊은 밤 지하 2층 그 방에서”(시 ‘고문’)라고 울부짖었다. 고문은 한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파괴할뿐더러 가족에게까지 깊은 상흔을 남기는 가장 악랄한 형태의 인권 침해다. 괴물 트럼프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21세기 미국을 중세 야만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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