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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폭발부상자 “나는 실험체… 국가유공자 지정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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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폭발부상자 “나는 실험체… 국가유공자 지정해달라”

입력
2018.05.2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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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포 폭발 사고 뒤 병원으로 이송된 이찬호 병장 모습. 페이스북 캡처
자주포 폭발 사고 뒤 병원으로 이송된 이찬호 병장 모습. 페이스북 캡처

10년 동안 키워온 배우의 꿈이 타버리는 데엔 수십 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1평(3.3㎡)도 안 되는 철갑 안에서 24살 청년은 생살이 타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지난해 8월 강원 철원군에서 일어난 K-9 자주포(스스로 움직이는 포) 폭발로 전신의 40%에 3도 화상을 입은 이찬호 병장이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썼다.

이 병장은 22일 페이스북에서 사고 뒤 군과 탱크 제조업체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민ㆍ관ㆍ군 조사단의 ‘부품 오작동이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사고 경위 발표 후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병장은 “연기자라는 10년 꿈이 찰나에 사망했다”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대가가 이것뿐이냐”고 답답함을 나타냈다.

이 병장은 “사고가 난 지 어느덧 9개월이 지났지만 아무런 보상과 진상 규명이 없다”며 (나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희생양이자, 실험체였다”고 주장했다.

이 병장은 그러면서 사고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1평도 안 되는 K-9 자주포 내부에서 웬만한 성인 남성 키보다 큰 장약(화약) 5호 3개가 폭발하면서 불꽃이 휘몰아쳤고, 피부가 화염에 오그라들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치료 과정에서도 몇 번을 기절하면서 생사를 오갔다”고 썼다.

이 병장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온몸의 40%에 3도 화상을 입었고 코와 광대뼈가 골절됐다. 또 시력저하, 안구함몰, 복시(물체가 두 개로 겹쳐 보이는 현상) 등 여러 후유증이 뒤따르고 있다.

이 병장은 올해 4월이었던 전역 시기도 미뤘다. 군에 있어야 그나마 민간 화상치료 전문병원의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비는 한 달에 500만~700만원에 달한다. 전역 후 치료비는 최대 6개월까지 군 병원은 물론 민간 병원의 치료까지 지원된다. 하지만 그 뒤엔 국가보훈처의 유공자 심사를 통해 지원 여부가 가려진다. 현재까지는 정부의 치료비 지원을 100%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3때부터 키워온 배우의 꿈을 접어야 할 처지다. 이 병장은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품은 연기자의 꿈,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꿈을 먹고 사는 청년이었다”며 “모두의 기대와 사랑으로 나날이 꿈이 현실로 돼가고 있는 찰나 돌연 꿈이 사망했다”고 적었다. “창문을 멍하니 보면서 죽기만을 기도하고 있다”며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까. 나라를 위해 헌신한 대가는 이뿐인 거냐”며 “보통도 힘든 삶, 최소한의 살아갈 이유라도 얻고 싶다”고 절망감을 표현했다.

사고 전 이찬호 병장 사진. 페이스북 캡처
사고 전 이찬호 병장 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 병장은 페이스북에 K-9 자주포 사고 부상자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의 주소를 올렸다. 그는 “조금의 빛 줄기를 받고자 용기 내 글을 올려 본다”며 “여러분의 동의, 공유, 태그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23일 낮 이 청원에는 8만3,200여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상태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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