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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문화 강대국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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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문화 강대국의 비결

입력
2018.05.25 19: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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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문화예술 대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프랑스가 문화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대부분의 나라들은 문화부를 독립 부처로 두고 있는데, 그 모델을 만든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1958년 대통령에 당선된 드골은 이듬해 문화부를 신설했다. 문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드골은 내각 서열에서 문화부 장관을 총리 바로 다음에 두었다. 이런 막강한 자리의 초대 장관으로 지명된 사람은 대문호 앙드레 말로였다. 그는 작가로 유명하지만 문화부 장관으로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지역의 공공 문화공간 ‘문화의 집’을 만들어 주민들이 쉽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게 했던 것은 대표적 치적이다. 10년간 장관으로 재임하며 문화부의 철학과 문화정책의 근간을 정립했던 장본인이다. 말로의 문화부는 시행령에서 “문화부의 사명은 가능한 한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인류의 예술적 자산에 접근하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교육에서 문화가 독립해 문화부가 창설된 의미에 대해 말로는 “교육부는 가르친다. 극작가 장 라신을 알게 하는 것은 대학의 몫이다. 문화부의 역할은 라신의 작품을 사랑하도록 하는 데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 알게 하는 것과 사랑하게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가령 과학지식을 가르쳐 알게 하는 것은 과학교육이지만 과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은 과학문화라는 이야기다.

우파 드골 정권의 말로 장관이 추진한 문화정책은 문화 강국 프랑스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좌파 미테랑 정권 때의 문화정책은 프랑스를 문화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1981년 집권한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선택한 문화부 장관은 자크 랑이다. 그는 12년간이나 재임하면서 문화부 예산을 두 배 이상 늘리고 정부 예산 대비 1%라는 상징적 선을 넘겼다. 문화제국주의에 맞서 문화적 예외주의를 고수하면서 “자국 문화 보호는 곧 모든 문화의 보호”라는 논리를 문화다양성 개념으로 발전시켰고, 2003년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의 단초를 제공하는 등 문화부 수장으로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문화를 팝, 록, 사진, 만화, 서커스, 요리 등 대중문화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는 문화대중화 정책을 추진했다. 오늘날 대중이 즐기는 세계적 축제가 된 음악축제, 영화축제,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등은 모두 자크 랑 장관 시절 만들어졌다. 1997년 프랑스 문화부는 문화통신부로 이름이 바뀌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 문화부는 좌우를 초월해 문화민주화, 문화다양성, 지방분권 등 일관된 원칙을 견지했다. 프랑스 정부는 문화를 인간의 창조적 정신의 산물로 보고 있으며, 문화산업을 ‘창작을 기반으로 문화정체성, 국민적 연대감을 형성하는 산업’으로 규정했다. 프랑스인들은 문화예술인을 아티스트라 부르며 존중한다. 공연예술인 실업급여 복지제도 ‘앵테르미탕 뒤 스펙타클’도 그들의 자랑거리다. 소득이 불안정한 예술가들과 공연예술 분야 테크니션들은 연간 507시간 공연활동 등 일정요건을 충족하면 일거리가 없을 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현재 10만명 이상이 혜택을 받고 있다. 

프랑스로 들어가는 관문 파리국제공항의 이름은 샤를 드골 공항이고, 프랑스국립도서관은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이다. 두 명의 걸출한 문화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프랑스인들의 기억법이다. 또한 문화적 업적이 두드러진 앙드레 말로와 자크 랑, 두 명의 문화부 장관은 현대 프랑스를 문화 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주역으로 존경받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인 대다수가 문화를 최고 가치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 제도나 훌륭한 문화예술가들을 많이 가진 문화국가 프랑스의 진정한 힘은 프랑스인들이 문화예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데 있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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