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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진해운, 어설픈 원칙의 쓴 맛

입력
2016.09.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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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시장원리 떠들다 파국 초래

언론도 덩달아 춤추다 정부만 비판

현실은 교과서 뛰어넘는 창의력 요구

법정관리 결정 전후 한진해운 처리에 관한 여론의 추세 변화는 한 편의 코미디였다. 옛날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해 파리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신문 르 몽드의 헤드라인은 약 20일 간 팔색조처럼 변화했다. 처음엔 ‘악당, 엘바를 탈출하다’였다. 하지만 곧 ‘나폴레옹, 시실리 상륙하다’로 뉘앙스가 변화했고, 수많은 지지자를 이끌고 파리 근교까지 이르자 ‘나폴레옹 장군 파리 근교 도착’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자 르 몽드는 ‘황제, 파리 입성하시다’라는 헤드라인으로 팡파르를 울렸다.

한진해운 처리에 관한 여론과 언론의 논조 변화가 꼭 그랬다. 법정관리 결정 전에는 목을 쳐서라도 본때를 보이라는 요구가 하늘을 찔렀다. 오너 일가의 부도덕과 무책임을 질타하고, 더 이상 혈세 투입은 안 된다는 강경론이 주류였다. 말깨나 한다는 학자들은 정부의 관치(官治)가 일을 망친다며 시장원리에 따른 엄정한 처리를 촉구했다. 한진해운을 끝장내지 않으면 채권단이든 정부든, 혈세를 축내는 도적으로 전락할 판이었다.

가뜩이나 대우조선을 지원했다고 국회에선 청문회까지 결정됐다. 지원금이 잘못 쓰인 건 따져 마땅하지만, 정부의 지원 추진 자체까지 싸잡아 시비하겠다는 건 지나쳤다. 산업경쟁력이니 고용이니 하며 한진해운 살리자고 나섰다간 또 청문회에 불려가기 십상이었다. 정부 당국자들로서는 굳이 나설 마음이 없어졌다. 한진그룹과 오너 일가는 일찌감치 팔짱 끼고 위기를 관망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누구도 나서지 않는 가운데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정부가 내세운 건 시장원리뿐이었다. 더 이상 혈세를 투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산은 등 채권단도 한진해운의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며 법정관리를 시사했다. 막상 일이 그렇게 돌아가자 그제야 왠지 꺼림칙한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론의 논조가 바뀌었다. ‘마지막까지 한진해운의 연착륙에 최선을 다하라’ ‘해운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문제 풀어라’같은 기사와 해설의 양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정도론 법정관리 행 폭주열차를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채권단의 추가 지원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 법정관리 돌입이었다.

난리가 났다. 먹구름에서 뇌성벽력이 쳤다. 즉각 5대양을 돌던 한진해운 선박 70여척의 발이 묶이고, 국내외 화주들은 화물 배송 차질로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한진해운이 국제 해운동맹에서 퇴출되면서 한진해운의 노선을 먹겠다고 외국의 글로벌 해운사들이 피를 본 상어떼처럼 몰려들었다. 30년 ‘해운한국’의 신화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위기가 닥쳤다. 여론과 언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정부는 도대체 뭐했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법정관리를 강행한 무능한 정부’ 같은 헤드라인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정부를 ‘조지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관치는 죄악’이라던 여론이 일제히 ‘왜 관치에 나서지 않았냐’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웃지 못할 풍경이다.

그런데 이 모든 파국과 코미디와 무능의 뒤죽박죽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부지불식 간에 우리 모두가 마치 경전처럼 인정하고 내세운 원칙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시장원리’다. 한진해운을 끝장 내라는 학자들이 내세운 것도 시장원리였고, 춤을 췄던 언론에 자주 등장한 원칙도 시장원리였다. 정부가 끝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부작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내세운 것도 시장원리였다. 시장원리라는 게 뭔가. 자원의 배분은 시장에 맡겨질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일반적 가설일 뿐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작동될 경우 타당할지 몰라도, 당장 한진해운 처리와 그에 따른 후폭풍을 감당할 수는 없는 교과서 속의 이론일 뿐이다.

한진해운의 침몰엔 수많은 어리석음과 무책임, 부도덕과 무능이 작용했지만, 그 중에도 가장 치명적이었던 해악은 우리 모두 시장원리를 섣불리 원칙화해 현실의 준칙으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어설픈 원칙이 빚은 파국적 결과의 쓴 맛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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