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분위기’ 학부모 불만 있지만
수업 방식 혁신에 아이들도 호응
특정 답 강요않는 융합 교육 주목
“청소년 정신 건강에 도움” 연구도
요식적 프로그램ㆍ체험처 부족 등
일부 부실ㆍ파행 운영은 극복해야
7일 서울시교육청 성북교육지원청을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방문했다. 2학기 자유학기제 준비 상황을 살피고 학교 현장의 의견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올해는 모든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된 첫 해다. 전체 3,213개교 중 98.2%인 3,157곳이 2학기에 이 제도를 시행한다. 이 부총리는 “이제 일선에서 제도를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유학기제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이다.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진로 탐색, 체험 학습 등 다양한 활동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의 제도다. 경쟁 입시 위주인 현행 교육체제가 청소년을 불행하게 만들고 적성과 진로를 고민할 시간도 안 준다는 자성에서 비롯됐다.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이 모토다.
예상대로 학부모들은 불만이 많다. 시험을 안 보니 애들이 아예 공부를 놔버린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요식적이고 체험처가 부족하다는 지적들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도입 초기 시행착오라는 게 교육당국 판단이다. 보혁 간 이견 없는 제도인 만큼 되돌리기보다 보완해나가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수업 방식의 혁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새롭게, 다양하게… 수업이 달라졌다
서울 동작중 서유정 교사의 자유학기 수학 시간에는 자는 아이들이 없다. 골치 아픈 수학 공식을 실제 생활과 연결시켜 가르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채꼴의 중심각과 넓이가 비례한다는 이론을, 학생들이 직접 부추전을 부치고 여러 등분으로 나눠보는 과정을 통해 터득하도록 하는 식이다. 선(線)의 종류와 의미는 서체 디자인을 해보면서 익히게 한다.
교육부는 지난달 28일 서 교사의 사례를 자유학기 실천사례 연구대회의 교실수업개선 분과 우수작으로 뽑아 소개했다. 자유학기활동 분과에서는 이상의 시(詩)를 감상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숫자 시를 써보게 한 뒤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그 시로 3차원 조형물을 만들게 한 경기 발산중 국어과 김지수 교사의 ‘더 스토리 어바웃 미(美ㆍme)’ 등이 선정됐다.
정부가 설정한 자유학기제의 핵심 목표는 이처럼 새롭고 다양한 수업 방식이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학기제 적용 학기 오전에는 국어ㆍ영어ㆍ수학ㆍ역사ㆍ과학 등 기본 교과 수업으로 편성된 공통과정이, 오후에는 ▦진로 탐색 ▦선택 프로그램 ▦동아리 ▦예술ㆍ체육 등 4개 활동 위주로 짜인 자율과정이 각각 편성되는데 수업 실험은 두 과정을 막론한다.
주목되는 자유학기 프로그램의 특징은 수업 하나로 여러 분야를 이해시키는 융합 교육이다. 이른바 스팀(STEAM) 교육(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예술(Art), 수학(Mathematics)을 합친 조어)이다. 예컨대 과학 원리로 아이템을 고안하고 설계도를 그리며 디자인을 배운 뒤 직접 제품을 만들면서 기술과 공학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이다.
인천 동암중의 과학과 수업 ‘과학마니아’가 대표적이다. 실생활에 유용한 제품을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과학ㆍ미술을 함께 체득하게 하자는 취지의 이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발상이다. 수업을 담당하는 전현자 교사는 “정해진 답을 주입하는 일반 수업과 달리 학생들한테서 답을 끌어내려는 게 융합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주입식 교육이 학습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반성이 자유학기제 출범 배경인 만큼 부각되는 공부 방식은 참여와 체험이다. 이를테면 ‘그린 라이트’(전기가 연결되면 초록생 불이 켜지는 등)를 직접 만들며 이론 대신 체험을 통해 전류ㆍ전압 등 전기 사용의 원리를 깨닫게 하는 서울 당산중 기술 수업이 그렇다. 이 학교 체육 시간엔 실내 암벽 등반도 해볼 수 있다.
학업 부실ㆍ교육과정 파행 지적도
그러나 이런 시도에 모두가 흡족한 것은 아니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진로 탐색 등을 핑계로 놀고 쉬도록 풀어주는 것이 자유학기제의 목표 아니냐는 의심이 애초부터 학부모들 사이에 적지 않았다. 학부모들이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노는 분위기’다. 자유학기 앞이나 뒤 학기에 기말고사 한 번만 치르기 때문에 해당 학년에 보는 시험은 고작 한 차례다.
일부 부실ㆍ파행 운영 사례도 드러났다. 견학, 관람, 특강 등으로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때워 넣거나 정원이 정해진 프로그램에 신청자가 몰리자 가위바위보로 체험 학생을 추리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체험처 부족 탓에 학부모가 물색을 맡는가 하면 사립학교에선 교과 교사가 진로 프로그램 준비를 떠안는 바람에 정작 교과 수업에 소홀해지는 파행도 빚어졌다.
꿈ㆍ끼 살리는 교육 이상 실현 필요
그렇다고 개혁 대상인 입시 교육을 유지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 교육당국과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나치게 학습 노력만 강조하는 현행 성취 위주 교육은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도전ㆍ경쟁을 강조하면서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학교 생활에 대한 흥미와 의욕을 잃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대한 탐색ㆍ고민의 시간도 결국 빼앗는다는 것이다.
청소년 정신건강에도 자유학기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에 실린 논문 ‘중학생의 자유학기제 경험’을 보면, 지난해 자유학기제 시범학교 중학생 8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 자유학기제를 겪으며 학생들이 가장 뚜렷이 느낀 감정은 친구 간 우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 만연한 폭력ㆍ따돌림을 해소할 방도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이라는 자유학기제 이상이 실현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원의 불안 마케팅에 학부모가 넘어가지 않도록 공감대를 넓히고 더 나은 여건을 갖추는 데 당국이 애써야 한다”고 말했다.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유학기제는 학생 중심과 배움 중심 수업이 핵심”이라며 “직업 대신 삶 체험 중심으로 자유학기 교과 과정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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