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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생각’에 감동할 수 없던 이유

입력
2016.01.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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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빠생각'은 6.25전쟁을 배경으로 전쟁 고아들이 노래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NEW 제공
영화 '오빠생각'은 6.25전쟁을 배경으로 전쟁 고아들이 노래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NEW 제공

내달 4일 개봉하는 영화 ‘캐롤’(감독 토드 헤인스)은 사랑 영화다. 곳곳에 널린 게 사랑이라지만 이 영화는 꽤 특별하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남녀의 애정이 아닌 여여(女女)의 농밀한 관계를 그려낸다. 사회적 금기와 여러 장애를 넘으며 사랑을 키워가는 두 여자의 사연이 애틋했다. 일부 관객들에게는 하찮은 소품으로 비칠지 모르나 1950년대의 여러 물건은 두 여자의 사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사진기자를 꿈꾸는 주인공 테레즈(루미 마라)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데 시대가 시대이니 필름을 이용한다. 연민하는 여인 캐롤(케이트 블랜쳇)의 아름다운 자태를 몰래 찍기 위해 조심스레 필름을 꺼내 카메라에 끼워 넣는 장면부터 묘한 설렘을 만들어낸다. 피사체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셔터를 눌러야 하는 필름 카메라의 작동 원리가 캐롤을 향한 테레즈의 마음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캐롤’을 보다 보면 조그만 소품 하나가 시대의 공기와 인물의 심리를 어떻게 잘 전달하는지 알 수 있다.

‘캐롤’뿐 아니라 미국의 여러 시대극을 보고 있자면 소품의 힘을 느낄 때가 곧잘 있다. 관객은 그 시대 미국에서 살지 않았어도 당시의 복장과 유행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배경 삼은 시대에 대한 면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소품의 일관성’을 이룩한 덕분일 것이다.

영화 ‘오빠생각’(감독 이한)을 보다 문득 시대상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6ㆍ25전쟁을 배경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노래로 희망 찾기에 나서는 과정을 영화는 잔잔히 그려낸다. 반전 메시지를 바닥에 깔면서도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이 영화는 쉬 욕할 수 없는 ‘착한 영화’다. 하지만 완성도 측면에선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영화 막바지에 주인공 한상렬(임시완)은 전쟁이 끝난 것을 기념해 간이 노천극장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이끌고 공연을 한다. 극장 안엔 의도된 조경처럼 나무 몇 그루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고 놀랍게도 앙증맞은 전등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국토가 피폐화되고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종전 직후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상렬의 판타지를 담은 장면으로 볼 수도 있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음이 그대로 ‘오빠생각’에 포개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700만 관객이 찾은 영화 ‘늑대소년’(2012)도 같은 맥락에서 눈에 거슬리는 장면을 지녔다. 비밀부대 소속 군인들은 초능력을 지닌 늑대소년(송중기)을 폐쇄회로(CC)TV로 감시한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초반쯤이다. 텔레비전이 보편화되지도 않던 시절에 CCTV라니. 아무리 판타지의 성향을 지니고 생체 실험을 소재로 한 공상과학 멜로영화라 해도 쉬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영화가 지난 시간을 그대로 복원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극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하지만 시대가 품은 보편성을 뛰어 넘으면 감동의 크기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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