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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제2롯데’의 진실, MB는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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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제2롯데’의 진실, MB는 응답하라

입력
2016.06.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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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회의서 “날짜 정해놓고 해결하라” 지시

군기지 인접해 유사시 국가적 재난 우려

재벌 이익 위해 안보 포기한 경위 규명을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안보와 비행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공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을 승인해준 제2롯데월드 일대 부지 전경. 올해 12월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안보와 비행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공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을 승인해준 제2롯데월드 일대 부지 전경. 올해 12월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제2롯데월드 건설 특혜 의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2008년 4월28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오간 대화다.

“높이 555m에 이르는 제2롯데월드 건물이 완성되면 외국 국빈을 태운 대형 항공기가 서울공항을 이용할 때 위험할 수 있습니다.”(이상희 국방장관)

“1년에 한 두 번 오는 외국 국빈 때문에 건설에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외국 국빈들이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이명박 대통령)

“…”(이상희)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보세요.”(이 대통령)

“국방부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이상희)

“그런 식이니까 14년 동안 결정이 안 난 것 아닙니까.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세요.”(이 대통령)

날짜를 정해놓고 해결하라는 대통령의 한 마디는 명령이었다. 대통령이 이미 결론을 내린 상황에서 후속조치는 형식절차에 불과했다. 반대 입장을 고수한 공군참모총장을 전격 경질한 뒤에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당시 공군이 분노한 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무지였다.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공군기지를 외국 국빈용 공항쯤으로 인식하자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부글부글 끓었다.

서울공항은 대통령 전용기가 뜨고 내릴 때 사용하는 위장명칭이고 실제 이름은 ‘공군 성남기지’다. 백두ㆍ금강정찰기를 관리하는 공군15혼성비행단과 북한군 침투를 저지하는 KA-1 경공격기 대대, 미 육군2사단 2항공여단 2대대 등이 배치된 전략기지다. 공군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걸쳐 제2롯데월드 건설 승인을 기를 쓰고 반대한 이유는 안보와 안전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성남기지의 두 개 활주로 중 동쪽 편의 각도를 2.97도 트는 걸로 안전 문제가 해결됐을까. 성남기지와 제2롯데월드 거리는 불과 5㎞다. 전투기가 수 초면 맞닥뜨릴 수 있는 거리다. 조종사들은 요즘도 “이ㆍ착륙 할 때마다 완공을 앞둔 제2롯데월드 건물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정상적 상황에서도 이런데 악천후나 기체결함, 조종 실수가 발생한다면 국가적 재난이 초래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유사시 북한의 핵심 공격대상에는 성남기지가 포함돼있다. 적의 폭격이 시작되거나 조짐이 보이면 기지 내 모든 항공기를 긴급 이륙시키는데 여러 대가 동시에 뜬다. 안전거리를 확보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긴박한 순간에 바로 옆에 초고층 빌딩이 있다면 아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개전이 돼 인근기지 전투기가 수시로 성남기지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 기지만큼 익숙하지 않은 조종사들에게 초고층 빌딩은 치명적 장애물이다.

더 심각한 건 최근에 자주 일어나는 비행착각의 경우다. 악천후 상황에서 항공기 조종은 계기 비행을 한다. 계기가 정확하더라도 조종사가 정보를 잘못 받아들이거나 날씨가 나쁘면 ‘버티고(Vertigo, 비행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82년 육군 특전사 요원을 태운 수송기가 성남기지 이륙 직후 인근 청계산에 충돌해 전원 사망한 사고와 2002년 에어차이나 여객기가 부산 김해공항 전방의 신어산을 들이박은 사고 원인도 비행착각이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제2롯데월드 허가로 국민에게 돌아온 게 무어냐는 것이다. “단 1주일이라도 좋으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지으라”는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꿈이 이뤄지고, 롯데에 10조원의 개발 이익만 안겨줬을 뿐이다. 안보를 포기하면서까지 제2롯데월드를 굳이 이곳에 지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롯데그룹 수사에 나선 검찰은 제2롯데월드 인허가 비리 의혹 규명에 머뭇거리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건드리기가 부담스러운 듯하다. 하지만 이 의혹을 뺀 롯데 수사는 시쳇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제2롯데월드는 한 정권이 재벌의 이익을 위해 국가 안보를 희생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앙에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국민이 무슨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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