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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박근혜, 반전(反轉)은 없다

입력
2016.10.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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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엄정함 망각 행위에 국민 분노

사실상 자격상실 국정주도는 불가능

2선으로 물러나 국정 정상화 도와야

그림 1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청와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림 1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청와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을 어려서부터 지켜봐서 그의 성정을 잘 아는 한 원로 정치인은 최근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민 앞에서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그냥 있지 않을 거요. 골방에 들어가 혼자 울면서 보복을 다짐하고 있을 거예요. 조심해야 돼요!”

박 대통령이 정부 시스템과 유능한 인재보다 최순실씨에게 의존해 국정을 운영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무속이나 주술적 관계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이 행태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국민은 이미 국사의 엄정함을 망각한 대통령을 마음으로 탄핵한 상태다. 정치적ㆍ도덕적 기반과 정통성을 상실함으로써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거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 이후 박 대통령의 일련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이 원로 정치인의 경고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아무리 국민의 신뢰를 잃었더라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헌법상 대통령의 지위를 갖고 있다. 스스로도 그런 권한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비롯해 새누리 상임고문단, 시민사회원로들을 잇따라 만나 의견을 들었다. 이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비서진을 교체하고 18년간 수족 역할을 해왔던 ‘문고리 3인방’의 사표도 수리했다.

과거 같았으면 꽤 과감하고 기민한 조치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반성과 참회 위에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한다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적당한 수위의 인적 쇄신을 통해 국민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국정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반전(反轉)의 시도라는 인상이 짙다. 국민의 반응도 싸늘하기만 하다.

박 대통령은 이미 개헌이라는 반전 카드를 허망하게 소진했다. 그 스스로 ‘국정의 블랙홀’이라며 반대했던 개헌이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국회 시정연설 기회를 통해 전격적으로 임기 내 개헌 추진을 들고 나왔다. 잘만 풀렸으면 임기 말 정국 주도권 확보와 함께 레임덕도 방지할 수 있었던 카드였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개입 증거가 담긴 태블릿 PC가 공개되는 바람에 24시간도 안돼 효용이 다하고 말았다.

잠재적으로 강력한 반전 카드가 하나 남아 있기는 하다. 북한 변수로 만들어질 수 있는 카드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핀치에 몰려 있다 해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또는 국지 도발을 해온다면 군 통수권자로서 역할이 단박에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김정은 정권은 험한 말 공격 외에 이렇다 할 도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럭비공처럼 튀는 김정은 정권이 언제 어떻게 엉뚱한 사단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북한을 계속 자극함으로써 도발을 유도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공개적으로 북 주민과 군인들에게 “남으로 오라”고 탈북 권유를 한 이래 인권 문제 등과 관련해 대북 강경 발언 수위를 높여 왔던 박 대통령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러기도 쉽지 않다. 섣부르게 나섰다가는 안보와 남북긴장을 이용해 정치적 핀치를 벗어나려는 의도가 너무도 뻔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박 대통령에게는 정국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어떠한 반전 카드도 없다. 최씨 등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한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박 대통령은 이미 국민의 눈에는 헌법 질서를 교란한 죄인이다. 자신이 그토록 질타했던 국기 문란의 몸통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내란 또는 외환에 관한 죄를 짓지 않는 한 대통령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지만 국정의 주도적 위치에 다시 설 생각은 말아야 정상이다. 대통령으로서 최소 역할에 그치고, 국회와 총리 중심의 내각에 권한을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

더욱이 그동안 심리적ㆍ정치적으로 크게 의존해왔던 수족들이 모두 잘린 상태다. 전화할 최순실도 없고 문고리 3인방도 청와대를 떠났다. 그들이 없기에 오히려 올바른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영적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 홀로 서기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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