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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완종 특사와 이건희 특사

입력
2015.07.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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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 경위가 공개된 특사에 두 가지가 있다. 성완종 특사와 이건희 특사다. 알려진 바로는 성완종 특사는 청탁의 결과이고, 이건희 특사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맞춤형인 경우다. 특사가 정치논리에 따른 것이니 두 특사 모두 법적 정의를 떠나 있는 건 어쩔 수 없겠으나, 과정이나 명분은 많이 달랐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참여정부에서 두 차례 특별사면 됐다. 법무부에서 특사 실무를 담당했던 인사는 평생 한번이 어려운 특사를 두 번 받은 건 분명 특혜라고 했다. 슬쩍 끼워 넣기 식으로 특사가 이뤄진 과정은 최근 검찰의 ‘봉하대군’ 노건평씨 조사에서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났다. 노씨에게 청탁과 함께 그 대가로 5억3,000만원 상당의 금전적 이익이 돌아갔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2007년 말 두 번째 특사 당시 청와대에 있던 문재인 비서실장, 전해철 민정수석과 정성진 법무장관까지 경위를 몰랐다고 하니 노씨의 활약이 짐작이 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특사는 2009년 당시 3수에 나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청와대 판단이 컸다. IOC위원으로서 두 차례 유치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이 회장은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사건으로 발이 묶인 상태였다. 그 법적 제재를 풀어준 과정을 당시 함영준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이 공개했다. 지난 달에 낸 책에서 그가 체육계와 함께 사면에 가장 중요한 호의적 여론 조성을 위해 했다며 소개한 대목에 이런 내용이 있다. 2009년 11월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조양호ㆍ김진선 유치공동위원장과 만나 한 얘기다. “…먼저 강원도에서 탄원서를 올리고, 이어 올림픽 유치위원회, 체육계, 재계 등이 가세하는 것이 어떨까요? 물론 국내외 언론과 해외 유력인사도 활용하시고요. 언론은 삼성이 맡고….“

실제로 이후 김진선 강원지사가 나서 평창, 강원도민들이 탄원과 사면복권을 건의했다. 조양호 위원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의 사면 건의가 이어졌고, 언론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빌면 “사면 여론이 마치 봄날 뒷산 바짝 마른 낙엽에 불을 붙인 것처럼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개월 뒤인 연말에 이 회장에 대한 1인 특사가 단행됐고, 그는 IOC위원으로 복귀해 지구를 몇 바퀴 돌며 유치전에 뛰어 들었다. 이처럼 당시 청와대가 이건희 특사 여론 조성에 공을 들인 이유는 법치주의의 정상적 작동에서 예외라는 점에서 성완종 특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욕먹을 각오하고 8ㆍ15 광복절 특사카드를 꺼냈다. 노건평씨 특사 의혹 수사에 잉크도 마르기 전인 때다. 그 만큼 ‘퍼펙트 스톰’처럼 다가오는 경제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교감하며 여론조성에 나선 모양새다. 전경련이 지난 9일 30대 그룹 사장단 긴급 조찬회의에서 사면과 함께 수감 중인 기업인 석방을 요청하고, 같은 날 대통령이 무역투자진흥회에서 기업인 투자를 위한 모든 정책수단의 동원을 언급한 것이 그렇다. 나흘 뒤에 대통령은 그 동안 부정적 입장이던 사면의 필요성을 통합을 내세워 직접 인정하기까지 했다. 여론이 무서워 누구도 나서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격이다.

약속과 소명을 중시해온 리더십마저 경제현실에 유보한 것이지만, 이번 특사의 여론은 마른 낙엽에 불 붙듯 하지는 않고 있다. 광복절 특사의 배경이 된 나쁜 경제사정이 기업인 사면 이후에 나아지기도 힘든 여건이다. 결국은 당장 필요성은 높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실효성이 적은 또 한번의 유전무죄형 특사가 될 공산이 크다. 소위 재계 판 떼법이나 고성불패(高聲不敗)가 되는 셈이고, 경제사범은 엄정 단죄가 어렵다는 국민감정은 굳어질 수 있다. 누구보다 이번 특사 대상에 포함되지 못해 다음을 기다려야 할 이들이 착잡해 할 것 같다.

이태규 사회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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