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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8 10:00

하루에 3개국, 아마존에서 경계는 무의미하다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79)

등록 : 2017.08.28 10:00

알고도 속고 속아도 모르는 중남미 국경 넘기 에서 이어집니다.

페루, 콜롬비아, 브라질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마존 상류.

콜롬비아와 페루, 브라질이 입을 맞대고 있는 아마존 상류의 국경.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긴장감 제로이며, 대략 어이 상실의 지대다.

콜롬비아 레티시아(Leticia)와 페루의 산타로사(Santa Rosa de Yavari), 그리고 브라질의 타바팅가(Tabatinga)는 너무 가까운 까닭에 국경의 의미가 유명무실하다. 자칫 잘못하면, 이크! (사실) 불법 입국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콜롬비아 레티시아에서 5분만 버스를 타면 브라질 타바팅가요, 5분간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면 페루 산타로사 섬이다. 단 5분, just 5 minutes! 그런데 실상 국경이 없다. 아니 느낄 수 없다. 국경을 체감하는 것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그 나라의 출입국 도장을 찍을 때다. 그런데 그곳에선 강을 건너도(페루) 육지로 건너가도(브라질) 국경 사무소가 없다. 대충이라도 검사하는 이민국 관리의 흔적조차 없다.

공항에 비행기 탑승이 아닌 출입국 도장을 찍을 목적으로 간다는 게 퍽 억울했다. 레티시아 시내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항.

콜롬비아에서 출입국 도장을 받으려면 레티시아 공항(Alfredo Vásquez Cobo International Airport)에 있는 사무소를 가야 하고, 브라질과 페루 역시 마을 깊숙이 위치한 사무소 및 경찰서를 방문해야 한다. 국경을 먼저 넘고 사무소에서 도장을 찍는 식이다. 결국 이 근방에 사는 어느 누구도 출입국 절차에 개의치 않는다. 콜롬비아인이 출입국 도장 없이 브라질에서 장을 보고 페루에서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일은 퍽 자연스럽다. 대부분 여행자도 마찬가지다. 불법을 즐긴다. 도장 없이 하루 만에 3개국 여행이 이곳에선 가능하다. 가령 콜롬비아 레티시아의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아마존 투어 상품은 페루, 브라질 땅도 포함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 나라의 입국 도장이 있어야 한다(더불어 콜롬비아 출국 도장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행사에선 한결같이 "No problem!"이라고 이야기한다. 절차를 물어볼 새도 없이 상품부터 줄줄이 선전한다. 이 국경 지대는 ‘불법 프리존’이구나! 문제는 재수 없게 걸리면(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나) 당연히 여행자 책임이다.

페루 마라샤 자연보호구역

카피바라(Capybara)가 길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는 마라샤. 이름의 뜻처럼 ‘초원의 주인’인 양 떵떵거리며 걷는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페루의 '마라샤(Reserva Natural Marasha, 콜롬비아 레티시아에서 보트로 40여 분 떨어진 자연보호구역)' 지역이었다. 콜롬비아 체류 90일 만기 일자까지 다가오던 터라 이 화이트 범죄(!)에 동조하는데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레티시아의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정직하게 문의했다. 마라샤에 가려면 페루 입국 도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은 그렇게’ 했다. 오히려 처음이거나 곤란한 질문인 양 쭈뼛쭈뼛하면서. 이곳 직원도 여행자들이 번거로운 절차 없이 자유롭게 투어에 참여하는 걸 아는 눈치였다. ‘불안이냐, 안녕이냐.’ 햄릿에 빙의된 우린 안녕을 택했다. 그리고 곧 우리의 합법을 향한 ‘생 쇼’도 시작되었다.

콜롬비아에서 페루로 국경을 넘는 법.

불시에 잠수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낡은 나무 보트. 레티시아와 산타로사를 수시로 연결하는 마법사.

‘미지의 세계=산타로사’에 대한 기대는 첫인상으로 붕괴되었다.

그날의 간추린 날씨. 섭씨 38도의 무시무시한 기온과 습도 지수 95%. 일단 레티시아 공항에서 콜롬비아 출국 도장부터 받았다. 아마존을 건너 페루의 산타로사로 향하기 전, 착실한 여행자의 자세도 갖췄다. 환전소에서 페루 화폐 솔(sol)로 환전했다. 딱 40달러만. 미지의 세계에서 하룻밤을 책임질 우리의 목숨 줄이었다.

배를 타고 도착한 산타로사의 첫인상? 잘못 온 줄 알았다. 흙탕물과 쓰레기가 환영하고 있었다. 겨우 나무로 이어 붙인 다리는 한번 빠져보라는 악담 같았다. 좀 더 들어가니 길이란 게 있긴 하다. 가장 멀쩡한 집을 골라 숙박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런데 브라질 헤알(real)로 가격을 제시한다. 응? 레알(real)? 여긴 페루가 아니더냐! 솔(sol)로 물으니 자체 (우리에겐 유리하지 않은) 환율로 계산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늘의 메뉴 가격에 ‘6’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연히 6솔인 줄 알았다. 20솔을 냈더니 알아서 6헤알로 알아서 계산하고 거스름 돈을 내준다. 딱히 돈 쓸 일도 없어 보이는 이 마을. 110솔(당시 40달러 환전 금액)은 불필요하고 과한 환전이었음을 빠르게 깨달았다.

산타로사에서 페루의 체취를 느끼기는 쉬우나 3개국 화폐가 통용되는 가운데 가장 유리한 화폐는 브라질 헤알.

대낮에도 산타로사 출입국 관리소의 문이 닫히는 건 흔한 일이다.

어쨌거나 우리의 미션은 출입국 도장을 받는 일이다. 점심 전 닫혔던 출입국 관리사무소의 문이 빼꼼히 열렸다. 목청을 높였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내 등장한 패션 파괴자. 그야말로 천 쪼가리를 걸친 채 슬리퍼를 질질 끄는, 내 생애 처음 만나는 이민국 직원의 차림이었다. 과연 그에게 입국 도장을 찍을 임무가 허락된단 말인가! 도장을 찍은 그는 곧 문을 닫고 당구 치러 간다는 동네 주민을 따라 떠났다. 다른 방식의 충격이었다.

비바람에 쓸려가지 않길 빌던 폭풍의 하룻밤을 보냈다. 레티시아로 얼마나 복귀하고 싶었던가. 전국 일주 끝에 집으로 돌아간 느낌과 흡사했다. 물론 산타로사엔 다시 와야 할 운명이었다. 같은 페루일지라도 산타로사와 마라샤 사이 연결편이 없었기에, 레티시아에서 마라샤로 이동해 1박2일을 지낸 뒤 다시 레티시아로 돌아왔다. 이후 아마존을 다시 건너 페루 출국 도장을 받았다. 산타로사 직원의 의상은 여전히 불량했다. 슬리퍼도 그대로였다. 마라샤를 방문하기 위해 공연한 절차를 밟는 건 아닐까.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망설여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억울하기도 했다. 그 누구도 우리 여권을 체크하는 일은 없었다. 일부러 경찰 앞에서 건방지게 다리를 떨어봤지만 여권 검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게 끝이 아니란 게 아득했다. 조금 있으면 건너갈 브라질 입국을 위해선 다시 레티시아 공항으로 돌아가 출국 도장을 받은 뒤 브라질 타바팅가 안쪽으로 이동해 입국 도장을 받아야 했다. 우리 생애 최악의 뺑뺑이였다.

“쏴아아~” 해 질 녘 레티시아에선 귀가 먹을 정도의 굉음을 내는 앵무새 떼의 낙하가 시작된다.

[영상] 51초 후 어마어마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날 해질녘, 레티시아의 산탄데르 공원(Parque Santander)에선 지구 종말이라도 온 듯 앵무새가 소나기처럼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하루의 종말다웠다. 3개국 출입국에 아노미 상태. 이제 더는 도장에 욕심부리지 않으리.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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