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외계어? 사고뭉치 무한 확장시킬 열쇳말!

알림

외계어? 사고뭉치 무한 확장시킬 열쇳말!

입력
2016.12.16 15:58
0 0
인실은 "인생은 실전이야, ○만아"의 준말이란다. 인생 선배랍시고 훈계하는 태도를 비꼰거다. 약자가 강자에게 보여주는 본때를 의미해 이렇게 쓰이기도 한다. "지도교수가 성희롱한다고요? 증거 남겨서 신고하세요. 인실시켜야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인실은 "인생은 실전이야, ○만아"의 준말이란다. 인생 선배랍시고 훈계하는 태도를 비꼰거다. 약자가 강자에게 보여주는 본때를 의미해 이렇게 쓰이기도 한다. "지도교수가 성희롱한다고요? 증거 남겨서 신고하세요. 인실시켜야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것들 사전

권재원 지음

우리학교 발행ㆍ252쪽ㆍ1만3,500원

이렇게 산뜻한 제목이라니. 일종의 기선제압이다. ‘그래 우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다, 어쩔래’하는 반골 표정 물씬 뽐내는 ‘요즘 것들 사전’은 근래 적잖이 쓰이는 은어를 화두로 삼아 다양한 생각거리를 담아낸 교양서다.

현타, 열폭, 꿀잼, 덕후, 어그로, 관종, 꼰대, 세 줄 요약 좀, 답정너, 병특, 인실 등. 가지런히 놓인 목차를 보고 있자면, 언뜻 여태 이것도 모를 ‘옛날 사람들’에게 ‘요즘 것들의 가공할 언어생활’을 안내할 것 같다. 물론 오빠가 되고픈 아재들의 흥미를 끌 대목도 적지 않지만 실은 각 단어의 용례에 이미 빠삭한 ‘요즘 것들’에게 더 유용할 책이다. 표제어의 쓰임을 설명하면서도 각 말의 이면에 담긴 의미와 사회현상 등을 짚어나가는 철학, 사회, 심리학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저자 권재원 박사는 25년 넘게 중학교에서 ‘요즘 것들’을 가르쳐 온 현직 교사다.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을 지낸 이름난 교육칼럼니스트이자 청소년 대상 교양서를 적잖이 써 온 베테랑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일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순간의 재미나 감정 분출을 위해 사용하는 단어들이 타인을 공격하고 비하하는 문화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과 말을 둘러싼 사회를 돌아볼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무방하지만 저자가 처음 염두에 둔 독자는 중3부터 고교생 정도다.

표제어는 16개다. “이 정도야 다 안다” 싶었지만 표제어 외에 해설 군데군데서 새로 배우는 말이나 용례, 함의도 적잖다. 어원에 대한 가설부터 말이 유행하고, 축약되고, 각종 용례로 응용되는 과정을 간략히 상술하는데 백미는 그 다음이다. 우리가 ‘열폭(열등감 폭발)’하는 이유를 연산군, 미국 총기사건, 알프레드 아들러의 열등감 개념 등을 통해 풀어 보고, ‘꼰대’를 연발하며 고민해 볼 ‘나잇값’의 의미를 논어, 키케로의 저서 등을 통해 다루는 식이다.

자연스럽게 말장난에 갇혔던 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된다. ‘열폭’의 두 측면, 열등 콤플렉스와 우월 콤플렉스의 진짜 문제점은 무엇인가. ‘꿀잼’을 유발하는 능동적 재미와 수동적 재미의 차이는 무엇일까. ‘덕후질’은 과연 유아적 퇴행인가. ‘꼰대’가 되지 않고 나이들 수 있는 열쇠는 없을까. 내용도 없이 말을 길게 하는 상대에게 ‘세 줄 요약 좀’을 요구하는 태도는 늘 온당한가. ‘답정너’의 정신은 겸손과 비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현상의 표출은 아닐까. 고민해보게 된다.

‘최 선생님 컨펌 사태’가 온 국민의 혼을 비정상화하는 와중이나, 이 책을 읽다 보면 무릇 참된 '선생님'의 정신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나이가 이미 반세기나 되는 입장에서 ‘요즘 것들’의 말을 수집하고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 “우리 말을 파괴한다”는 하나 마나 한 훈계 대신, 아이들이 무심코 쓰는 말 속에서도 배우는 바가 있길 바라는 저자의 고민이 각 장에 듬뿍 담겼다.

주의, 다 읽고 갑자기 요즘 것들의 세상을 이해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도 어눌하게 남발하지는 말자. 핵노잼, 관종 소리 듣기 십상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