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나이 등 신상정보 요구 안 해
사람들 눈치 안보고 부담 없이 표출
이용자들과 소통하며 위로도 받아
"악성 댓글로 인한 부작용 경계해야"
“아빠는 간암, 오빠는 돈 쓸 생각만, 엄마도 아프시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이제 끝낼 때가 된 건가. 다음 생에도 지금 아빠, 엄마를 만나서 효녀로 살고 싶다. 그 땐 아픈 데 없이 행복하게….”
최근 한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에 올라온 글이다. 가정불화로 고민인 여중생, 수십 번이나 서류심사에 떨어져 울상인 취업준비생, 명예퇴직을 앞둔 50대 가장 등 세대와 직종을 가리지 않고 말 못할 사연으로 가슴 답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SNS를 수놓고 있다. 지난해 5월 한 신생 벤처업체가 만든 ‘센티’를 시작으로 10개월여 만에 5,6개 가량의 익명 SNS 앱이 생겨나 네티즌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익명 SNS 앱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은 개인정보가 일절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원가입 시 필요한 이름과 나이, 이메일 주소 등 신상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때문에 글을 올리는 이도, 타인의 게시글에 댓글을 다는 이용자도 부담 없이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표출할 수 있다. 실명을 기반으로 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기존 SNS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소통의 저변도 훨씬 넓어졌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개방형 SNS로 인한 사생활 침해 우려 때문에 이전에도 익명을 전제로 한 SNS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같은 대학 사람끼리 익명으로 학교에 대한 각종 불만을 토로하는‘○○옆 대나무 숲’이란 온라인 계정이 대표적이다. 동종업계 사람들이 모여 익명으로 회사를 비평하는 ‘블라인드’란 앱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의 진원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둘 다 소통 대상이나 주제가 한정된 ‘폐쇄형’에 불과했다. 여기서 한층 진화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익명의 소통 공간으로 재탄생한 게 지금의 익명 SNS다.
인기는 폭발적이다.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모씨앱’은 이달 1일 기준으로 다운로드 건수가 20만건을 훌쩍 넘어섰다. 생면부지 남과 고민을 나누고 싶어하는 글도 일일 평균 25만개씩 올라온다. 모씨앱 개발자 김봉기 대표는 2일 “남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하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를 파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글쓴이의 고민과 유사한 경험을 덧붙여 따뜻한 조언을 건네는 댓글이 수십개씩 달린다. SNS가 태동한 미국에서도 익명 SNS 앱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 익명 SNS 중 하나인 ‘시크릿’은 지난해 말 페이스북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익명 SNS의 성행은 거꾸로 여전히 소통에 목마른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올해 1월부터 모씨앱을 이용한 취업준비생 이모(26ㆍ여)씨는 “대학 입학 때부터 스펙 쌓기에 쫓겨 개인주의가 심해 취업 고민과 자괴감을 마땅히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실명 기반 SNS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내밀한 감정을 공개했다가 ‘마녀사냥’의 제물이 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은 그간 연예인이나 지인 등이 SNS 게시물로 인해 곤욕을 치른 경우를 여러 번 목도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막을 찾게 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앞선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에서도 수많은 문제가 돌출된 것처럼 익명 SNS 역시 명예훼손 등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이 도입된 초기에 익명성을 이용해 악성 댓글이나 악의적인 글이 유달리 많았다”며 “익명 SNS 앱이 새로운 소통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본래 취지에서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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