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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명 빚 탕감”…빚 갚아 온 사람은 울화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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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명 빚 탕감”…빚 갚아 온 사람은 울화통

입력
2017.06.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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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장기연체자 탕감 추진에

“빚 안갚고 버텨 온 사람만 혜택”

형평성 논란에 모럴해저드 비판

“갚은 빚 소급해 돌려달라”요구도

“힘들지만 열심히 빚을 갚아 온 사람들이 빚을 안 갚고 버텨 온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더 손해를 본다는 게 말이 되느냐?”

서민금융진흥원 자회사인 국민행복기금 콜센터에 최근 빗발치고 있는 항의 전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랜 기간 빚에 시달린 장기 연체자의 빚을 전액 탕감해주기로 하자 이미 국민행복기금에서 채무조정을 받은 뒤 빚을 갚고 있던 성실 상환자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일부는 “그 동안 갚은 빚도 모두 소급해서 돌려 달라”고 요구할 정도다. 국민행복기금 콜센터 직원 황모씨는 “행복기금에서 빚을 절반 가량 탕감 받고 나머지는 10년에 걸쳐 갚고 있던 성실 상환자들의 항의가 가장 많다”며 “뾰족한 답을 할 수 없어 나중에 다시 문의해 달라는 식으로 안내한 뒤 서둘러 상담을 마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장기연체자 100만명의 빚을 전액 탕감해주기로 한 문 대통령의 공약이 이르면 하반기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책 시행 과정에서 적잖은 반발과 논란이 예상된다. 지금처럼 사실상 연체 기간을 빚 탕감 기준으로 삼을 경우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1일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장기연체자 구제 공약은 국민행복기금이 갖고 있는 소액·장기연체 채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빚 원금이 1,000만원 이하이고 연체기간이 10년을 넘긴 채권이다. 1,000만원을 10년 이상 못 갚을 정도면 사실상 극빈층에 해당하는 만큼 이들의 빚과 이자를 완전히 탕감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게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는 논리다.

문제는 정책 수혜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심각한 형평성 문제와 도덕적 해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국민행복기금은 박근혜 정부 때 저소득층의 빚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됐다. 지난 2013년 금융회사와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사들인 대출 채권에 대해 이자는 모두 탕감해주고 원금은 최대 90%까지 깎아주는 방식으로 채무자의 빚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대신 기금은 나머지 빚을 상환받아 채무조정에 필요한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3년부터 올해 3월말까지 국민행복기금에서 빚을 탕감받은 채무자는 총 58만1,000명이다. 이 중 31만3,000명(53.8%)은 이미 빚을 모두 갚았고, 16만2,000명(27.8%)은 현재 남은 빚을 정상적으로 상환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 관계자는 “정상 상환하고 있는 사람 중엔 10년 이상 연체자이면서 상환 여력이 결코 넘친다고 보기 힘든 극빈층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받을 혜택은 빚을 한 푼도 안 갚은 이들보다 적을 수 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런 맹점을 인식해 투트랙으로 제도를 설계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빚 1,000만원 이하·연체 10년 이상인 채무자 123만명을 모두 정책대상으로 삼되 소득심사를 거쳐 완전탕감 수혜자를 가려내겠다는 계획이다. 대신 빚을 힘들게 갚고 있는 성실 상환자에겐 곧바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신용점수를 높여주는 식의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관련 법을 고쳐 장기적으로는 신용평가사의 연체 기록도 삭제해줄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방안도 반발을 누그러뜨리기엔 부족해 보인다. ‘버텨야 탕감받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도 문제다. 연체 기간은 10년이 안 되지만 사정이 더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정책 사각지대가 생길 수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시적 조치가 아니라 중장기적 제도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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