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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김영란법 수정논의 일단 접자

입력
2015.03.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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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만든 법 속히 뿌리내리게 해야

부작용 문제 재론하면 또 부지하세월

시행하고 손질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

6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공무원들이 청사를 나와 퇴근을 하고 있다. 뉴시스
6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공무원들이 청사를 나와 퇴근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엊그제 국회를 통과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 소위 김영란법에 대한 수정 논의를 일단 접어두는 게 좋겠다. 자칫 꼬리를 붙들고 흔들다가 몸체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기대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있어서도 안 된다.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려 막 태어난 아기가 사산(死産) 선고를 받지 않기를 희망한다.

미국 워싱턴DC에서 근무할 때다. 비 오는 날 출근길 쇼핑센터 입구에 승용차가 섰다. 뒷좌석에서 고령의 신사가 우산을 쓰고 내리더니 신문가판대로 걸어가 동전을 넣고 신문을 가져갔다. 승용차에는 운전기사가 앉아 있었다. 프레스센터에서 궁금증을 얘기했다. 관용승용차였으며, 그는 우리의 차관급 인사였다. “자신이 볼 신문이니 자기가 자기 돈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세금으로 일하는 운전기사의 업무에는 신문을 사오는 일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부연해 주었다.

애당초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법 제정을 얘기했을 때는 그 대상이 공무원이었고,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까지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들이 불거졌는데도 금품수수와 업무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어 풀려나 여론의 분노를 산 일이 계기였다. ‘입증할 수 없더라도 100만원 이상 금품수수’가 김영란법의 기초가 된 이유다. 여기에 공사(公私)구분과 국민세금이란 두 가지 핵심 기준을 바탕으로 법제화 논의가 시작됐다.

최근 들어 국회가 제대로 밥값을 한 것은 국회선진화법과 김영란법을 여야합의로 만들어 낸 일이다. 국회선진화법은 현재의 19대 국회가 개원하기 직전인 2012년 5월 국회법개정 형태로 18대 국회의원들이 마무리했다. 이번 김영란법 제정은 19대 국회가 마무리하고 20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돼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보면 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밀려 법을 만들기는 하겠지만, 나와 우리의 책임과 피해는 최대한 줄이고 보자’는 얄팍한 계산들이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경우 국회에서의 공격수비 구도가 바뀌자 ‘국회를 마비시키는 악법’이라는 얘기들이 나오면서 다시 고쳐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그 동안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한 부작용이 없지 않았으나 그 법 때문에 여의도 정치가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부작용에 의한 폐해보다 법을 유지해야 할 명분이 더 크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이번에 제정된 김영란법에 대해 예상되는 부작용들이 줄줄이 열거되고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다. 무엇보다 공사구분과 국민세금이라는 두 전제가 크게 훼손되면서 방향성이 흔들렸다. 선거를 일년 남짓 앞둔 국회의원들의 속셈도 곳곳에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을 이유로 김영란법 제정이 연기 혹은 무산되어서는 안되며, 수정이 전제된 ‘임시 법안’으로 평가절하되어서도 안 된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순간 우리 사회는 이미 김영란법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됐다. 세부적으로 문제점이 없지 않고 1년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고 하지만 국민의 인식변화와 기대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3분의 2에 가까운 국민이 반기고 있다는 여론조사는 국회선진화법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수정 문제를 논의할 경우 김영란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셈이고, 다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부지하세월일 게 분명하다.

공사를 구분하여 살아야 하는 직업이 공무원과 교원 언론인만이 아니다. 더구나 언론인과 교원은 대부분의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제정된 김영란법은 일단 시행되기를 바란다. 어렵사리 만든 법이 또다시 2년, 3년 연기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산을 쓰고 나와 신문을 사서 보던 미국의 공직자 모습이 선하다. 김영란법의 경우 시행을 하고 부작용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그 취지를 더 빨리 살리는 길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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