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현빈 기자

등록 : 2018.02.16 11:00
수정 : 2018.02.16 20:44

올림픽과 대통령, 그리고 검찰과의 악연

등록 : 2018.02.16 11:00
수정 : 2018.02.16 20:44

MB, 평창올림픽 유치했지만 소환 앞두고 근심

DJ, 2002년 월드컵 때 둘째 아들 검찰 불려가

전두환, 5공 비리 떠들썩… 88올림픽 참석 못해

9일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다. 평창=김주영기자

디케의 저울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 성화가 타올랐습니다. 전세계에서 온 선수들과 관중들의 들뜬 표정이 사진과 영상 속에 녹아 있었죠.그런데 유독 한 사람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입니다. MB는 재임 당시 평창올림픽을 유치했고, 또 전임 대통령으로서 이날 열린 평창 올림픽주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한 사전 리셉션에 참석한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많았지만 그 웃음 속에 근심이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저 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요즘 서초동 법조인들과 언론에선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다스 실소유주 논란 사건으로 MB의 검찰 소환 조사시기를 점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여러 정황상 현재 MB 주변인들을 타깃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종착역이 MB가 될 것이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 5일 구속기소된 ‘MB 집사’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 이어, 최근엔 ‘오른팔’로 알려진 장다사로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장 전 기획관은 지난달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장을 전달하러 서울 강남구 MB 사무실을 찾았을 때 MB와 배석해서 초청장을 직접 전달 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검찰 수사는 물 흐르듯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일 MB 측근들이 소환 조사를 받고 있고, MB 직계가족들도 수사대상으로 거론됩니다.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국정원에서 받은 돈을 김윤옥 여사 측 여성행정관에게 직접 줬다”고 말한 것을 보면, 김윤옥 여사를 어떤 방식으로 든 조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에 도곡동 땅 매각 자금 중 일부를 사용한 정황이 포착된 아들 시형씨도 소환 대상입니다. MB는 가족에 대한 조사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조사를 받으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찰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축제를 염두에 두고 언론에서 관심 가질 만한 떠들썩한 수사는 가능하면 자제한다는 입장이지만, MB로선 자신이 유치한 평창올림픽에 대한 기억이 평생 씁쓸하게 남을 법 합니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지구촌 축제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동안 검찰 수사로 말 못할 고통을 느낀 대통령은 MB뿐이 아닙니다. 2002년 6월 19일.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우리 선수들이 이탈리아를 누른 바로 다음날,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가 모습을 나타냅니다. 기업체들로부터 각종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은 것입니다. 임기 말이었던 DJ로선 참담한 심경이었을 겁니다. 홍업씨 문제가 불거져 이미 당시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사과를 하는 등 마음에 큰 짐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월드컵이 열린 겁니다. 그 해 6월 4일 부산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예선 경기에서 유상철 선수가 골을 넣자 DJ는 기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그 장면을 기억하는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자식을 향하는 검찰 수사로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을 때, 골을 넣자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큰 축제이니만큼, 홍업씨 비리가 적발돼도 소환 조사는 월드컵 이후로 연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8강 진출 소식에 전국이 떠들썩할 때 홍업씨가 검찰에 전격 소환되자 이유와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습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홍업씨 소환을 미루겠다는 검찰을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 국회사진기자단

30년 전인 1988년 9월 17일 전세계가 주목한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도 적어도 단 한 사람은 마음 편히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을 겁니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적 행사에 초대를 받아 모습을 비추는 게 관례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도 재임 때 올림픽을 직접 유치했습니다. 서울올림픽 개최가 1981년 결정이 됐으니까요. 전 전 대통령이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건 자업자득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그가 초청을 받지 못한 건 아니었습니다. 1988년 9월 10일 개막식을 일주일 앞두고, 당시 박세직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서울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초청장을 전달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정중히 사양했죠.

이른바 ‘5공 비리’로 전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이 곱지 않았고 부인 이순자 여사가 연루된 재단 공금 횡령 의혹, 동생 전경환씨가 회장으로 재직한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서 잇따라 터진 비리 의혹 등이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검 중수부가 5공 비리 수사에 전격 투입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예의상 초대장을 보낸 것이지만, 당시 5공 청산에 혈안이 된 6공 세력들은 전 전 대통령을 절대 개막식에 오게 해선 안 된다는 기류가 강했다”고 설명합니다.

보는 이도 참가하는 이도 즐거워야 할 지구촌 대축제. 우리나라가 언제 또 이 같은 대회를 유치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론 축제의 장에서 검찰과의 악연 때문에 우울해하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길 기대합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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