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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원재료 기준 탓 설 대목에도 침울한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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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원재료 기준 탓 설 대목에도 침울한 농가

입력
2018.02.01 18: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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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선 늘렸지만

가공식품은 함량 50% 넘겨야

권익위는 2주 넘게 유권해석 미뤄

홍삼 농축액 등 명확한 기준 없어

농민들 “가공 전 재료부터 따져야”

강원 철원군에서 20년 넘게 인삼을 재배하고 있는 임연재씨는 1일 “이제 농사를 그만둬야 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생산비 인상에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로 매출이 감소해 이중고를 겪던 중 지난달 17일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선이 인상돼 희망을 품었으나, 국민권익위가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놓지 않아, 혜택을 받을 수 없음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선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조정됐지만, 가공식품은 농축수산물 함량이 50%를 초과한 제품만 적용된다. 홍삼 가공 제품은 농축액 상품이 대부분인 데다 5만원 이상 고가 제품이 많아서 김영란법 시행 이후 판매량 감소로 홍삼 재고가 날로 쌓이고 있다. 임씨는 “농축액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농축수산물 원료를 기준으로 해야 형평성에 맞지 않느냐”며 “원재료 함량 기준을 현실에 맞춰 수정하지 않으면 농가 피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김영란법 개정에 따라 설 대목에 접어들며 과일, 육류 등 5만~10만원대 농축수산물 상품 매출이 지난해보다 2, 3배 늘었다. 그러나 홍삼 가공식품 등을 제조하는 업체와 농가는 김영란법 주무 부처인 권익위의 유권해석이 늦어지면서 설 대목에도 썰렁하기만 하다. 설 선물 판매에 한창인 백화점, 대형마트, 전통시장에서도 인삼과 과일류의 착즙ㆍ추출액 등을 사용한 건강제품에 대해 김영란법 적용 질문이 이어지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어 선물구매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농축수산물 선물가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김영란법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농축수산물의 농축액이나 즙 같은 액체류를 사용한 가공식품에 대해서는 농축액을 기준으로 함량이 50% 이하일 경우 개정안 시행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인삼협회, 전통주 제조업체 등이 권익위에 홍삼 농축액 등 액체류 가공식품을 개정된 김영란법의 선물 가액 상한 대상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권익위가 2주가 넘도록 유권해석을 미루고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현재 법령검토와 전문가 의견 수렴, 부처 협의를 통해 검토하고 있다”면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권익위의 늑장 대처로 홍삼, 과수, 약초 농가가 설 대목을 놓치게 된 것이다.

농림부와 농민단체는 농축액 함량이 아닌 가공하기 전 원재료 중량 기준으로 함량비중을 환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삼 농축액 1g에는 원재료인 인삼이 약 5g 이상 필요하다. 10g짜리 1포가 홍삼농축액 3g과 정제수 7g으로 생산된 홍삼제품 A는 성분표에 홍삼농축액 30%로 표기돼 있지만 원재료인 인삼으로 환산하면 15g 이상을 함유한 것과 같아 150% 이상이라는 것이다. 인삼 농가들은 “홍삼농축액 10% 이상이라면 인삼 원재료 50% 이상 기준을 충족한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구기자, 흑마늘, 오미자 등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건강식품업체와 전통주 업체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전통주는 대개 곡물로 만든 알코올 성분이 50% 미만이고 나머지는 물이어서 선물 가액 최대 5만원이 적용되지만, 수입 와인은 100% 포도로 만든다는 이유로 개정된 10만원이 적용된다. 국산 농축수산물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충남 청양군에서 구기자를 재배하는 복영수씨는 “현실성이 없는 법 개정으로 농가에 재고가 쌓이면서 농작물 생산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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