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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민을 들어 드립니다”…길거리로 나온 ‘프리 리스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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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민을 들어 드립니다”…길거리로 나온 ‘프리 리스닝’

입력
2017.10.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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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컨페셔널(Urban Confessional)'을 결성한 벤자민 매소스가 프리리스닝 손펫말 들고 길거리에 서 있다. '어반 컨페셔널' 홈페이지 캡처
'어반 컨페셔널(Urban Confessional)'을 결성한 벤자민 매소스가 프리리스닝 손펫말 들고 길거리에 서 있다. '어반 컨페셔널' 홈페이지 캡처

직장인 박예지(24)씨는 최근 퇴근길에 서울 삼성역에서 ‘프리 리스닝(Free Listening)’이라고 쓰여진 손팻말을 든 여성들과 마주쳤다. 낯선 이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한다는 게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답답한 이야기만 들어주겠다는 그들에게 속마음을 열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박씨는 “취지가 좋아서 내 이야기를 말하게 됐다”며 “말하고 나니 고민을 해결할 힘도 얻은 기분이다”고 만족해 했다.

최근 국내에 등장한 프리 리스닝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프리 리스닝은 다른 사람들의 고민 등을 공짜로 들어주는 캠페인이다. 당초 지난 2012년 배우이자 연기 교사인 미국의 벤자민 매서스씨 주도로 결성된 ‘어반 컨페셔널(Urban confessional)’이란 단체에서 출발했다. 바쁜 일상에 쫓긴 현대인들에게 공허함을 채워주는 한편 자존감도 회복시켜 주겠다는 취지에서다. 어반 컨페셔널에 따르면 현재 프리 리스닝에 동참한 나라는 전 세계 50개 국가에 달한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이들은 사회관계형서비스(SNS)로 상호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프리 리스닝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선 중요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먼저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만 질문을 해야 하고 ▦말하는 이들의 침묵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말하는 이들에게 평가나 판단, 충고와 조언 등은 자제해야 한다. 상대방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으로 공감해주기 위한 조치다.

서울시치유활동가집단 ‘공감인’의 프리리스닝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이 손팻말을 직접 만들고 있다. '공감인' 제공
서울시치유활동가집단 ‘공감인’의 프리리스닝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이 손팻말을 직접 만들고 있다. '공감인' 제공

국내에선 서울시치유활동가 집단 인‘공감인’이 대표적인 프리 리스닝 캠페인 참여 단체다. 지난 3월부터 캠페인을 시작한 공감인은 참여자들과 함께 직접 쓴 손팻말을 들고 매월 22일(한자 ‘耳 귀 이’가 두 번인 날짜)에 공감의 힘을 전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캠페인 장소는 매번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이달에는 서울 양재시민의 숲 가을축제에 참여해 캠페인을 진행했다. 공감인 관계자는 “2015년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자살 사망자수는 약 1만 5,000명으로, 하루 26.5명에 달하면서 11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다”며 “힘들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들어주는 사회를 위한’ 프리 리스닝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자발적으로 프리 리스닝에 참여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황순찬(28)씨는 “관계에서 오는 부담을 버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고민을 들어줄 수 있었다”며 “프리리스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길에 나서는 것이니 부담 없이 다가가 진솔하게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으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프리 리스닝 캠페인은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달 중순엔 전남 목포에도 프리 리스닝 단체인 ‘리스너’가 결성됐다. 상담사로 근무하면서 주로 대학생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 온 김혜련 리스너 대표(27)는 “요즘 청년들은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부모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진로 고민에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다”며 “언제든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이곳에 있으니 청년들이 자신의 고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존감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호응도도 긍정적이다. 리스너에서 프리 리스닝을 경험했다는 대학생 홍씨(19)는 “나를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 표정과 제스처로만 공감을 전하니 위축되지 않고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며 “말하는 것 만으로도 고민이 정리되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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