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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
주필

등록 : 2016.06.23 20:00

[황영식의 세상만사] 무심코 외치는 ‘파이팅!’

등록 : 2016.06.23 20:00

‘맞춤형 보육’이 명분과 정당성 앞서

정책 변경 과정 허점이 논란의 불씨

정치색 탈피, 현실 문제로 접근해야 20여 년 전 일본에서 아이를 보육원에 보냈다. 공립보육원에 보내려다 빈 자리가 없어 사립보육원에 보냈다.

은근히 비용 걱정을 했으나 기우(杞憂)였다. 당시 일본 내 소득이 없어 보육료는 0엔이었다. 같은 보육원에 다니는 부잣집 아이가 월 5~6만엔을 낸다는 소리에 차별을 우려했지만, 그 또한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지역 복지사무소가 부모 소득에 따라 보육료를 책정해 거두어 보육원에는 원아 숫자대로 나눠주었으니, 보육원은 아이들이 ‘얼마짜리’인지 알 수도, 알려고 할 이유도 없었다.

대신 아이를 ‘시설 보육’ 대상으로 만드는 게 골칫거리였다. 주간ㆍ야간ㆍ종일반을 가릴 것 없이 전업주부는 원칙적으로 보육원에 아이를 맡길 수 없었다. ‘가정보육’이 불가능한 특별한 사정을 복지사무소가 인정해야 했다. 당시 아내는 유화(油畵)에 빠져 있었고, 일본 작가들과 함께 할 모처럼의 기회를 살리고 싶어했다. 궁리 끝에 구청의 ‘외국인을 위한 무료 일본어’ 교육 과정에 참여했다. 주 3회, 하루 두 시간씩의 간단한 과정이었지만, 복지사무소는 흔쾌히 인정했다.

오래 전의 일이 떠오른 것은 ‘맞춤형 보육’ 논란 때문이다. 7월부터 전업주부의 0~2세 영유아, 즉 2014년 1월1일 이후 출생아의 종일반(12시간) 이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하루 6시간(월 15시간의 긴급보육 바우처 별도 지급)의 ‘맞춤반’을 이용하도록 한다는 정부 방침에 민간 어린이집과 전업주부,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야당이 반발하고 있다.

원론적 정당성과 명분에서는 정부가 앞선다. 우선 부모와의 접촉과 교감이 아이, 특히 0~2세 영유아에게 시설보육보다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충분히 입증됐다. 또 믿고 아이를 맡길 만한 어린이집이 흔하지 않아 맞벌이 부부 아이들이 전업주부 아이에 떠밀려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부조리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평등권의 일반원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국가적 과제와도 충돌한다. 일부 민간 어린이집이 학부모와 짜고 영유아를 허위 등록해 지원금을 가로채는 범죄도 드문드문 발각된다.

반면 맞춤형 보육이 늘어나면 결국 어린이집 경영은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경영악화 방지책부터 마련하라는 민간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들의 주장에는 그런 분명한 현실적 이유가 있다. 기업형 어린이집은 몰라도 영세 어린이집, 특히 가정 어린이집이 취약할 것이고, 야당 반대도 이에 집중돼 있다. 그 동안 아이를 종일반에 맡겼던 전업주부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양쪽 얘기를 들어보면 현재의 논란이 예산 감축의 결과는 아니다. 줄어든 영유아 숫자를 감안하면, 관련 예산은 늘었다. 논란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정치색이 칠해진 결과다. 애초에는 정치색이 없었으나 여야의 태도가 엇갈리면서 정치색이 칠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집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성토하던 야당과 시민단체가 어린이집과 손을 잡은 것이 직접적 계기지만, 원인(遠因)은 정부가 제공했다. 하필이면 ‘맞춤형’을 갖다 붙인 작명 자체가 ‘보편적 복지’주장과의 대결을 전제했다는 오해를 살 만했다. ‘맞춤반’ 도입은 어디까지나 보편적 복지의 하나지, 선택적 복지는 아니다. 무슨 일이든 정치 쟁점으로 둔갑해 나라를 반으로 쪼개고 마는 한국적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실책이다. 정책의 정치색을 최대한 지워 현실 문제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아쉽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도 그래야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국가 정책이 너무 자주 ‘국민 저항’에 부딪친다. 실제는 일부 이해관계자의 반발에, 국민이 무심코 박수나 ‘파이팅!’을 보태는 구조다. 진정한 ‘국민 저항’은 아니어도 여론의 관심을 끌어 정치 쟁점화하기에 충분하다. 1987년 6월 항쟁 때 시위대의 구호를 따라 하던, 또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때 ‘대한민국!’을 외치던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면, 함부로 ‘파이팅!’을 외칠 게 아니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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