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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선거제도 개혁의 선행 조건

입력
2018.08.13 10:39
수정
2018.08.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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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선거제도 개혁이 사회적 화두로 재등장하고 있다. 신임 국회의장이 ‘올해가 선거제도 개혁의 적기’라고 깃발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유한국당도 손해 볼 일이 없다’면서 지지하고 나섰다. 각 정당의 대표자들은 개혁의 시급성을 역설한다. 비례제보다는 다수제의 성격이 강한 현행 당선자 결정 방식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개혁하자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 이익을 보고 있다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만 일단 입장이 불분명하다.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배경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정하자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와 같이 정당 지지율은 50%를 조금 넘었던 더불어민주당이 광역의회 의석의 79%를 차지하거나, 9% 가까운 지지율을 얻었던 정의당이 1%대의 의석만을 획득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소위 ‘선거에서 각 정당이 얻는 득표율과 국회 내 의석률 간의 비례성’이라는 정치적 가치의 실현에 민심이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러한가? 비례성의 가치가 현대 대의민주주의 사회를 운영하는데 매우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 민심의 중심이 선거제도의 개혁에 있는가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우선 과거 한국 정치의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달성하려는 ‘다당제 합의민주주의’ ‘정당 간 정책대결의 정치’ 등에 민심이 쏠려있다고 보기 힘들다. 사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양당제로 규정할 수 없다. 오히려 자유민주연합이나 정주영씨의 국민당, 최근의 국민의당 등 상당히 성공적인 제3당이 존재했던 것이 현실이다. 특정 지역 또는 좌ㆍ우의 이념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주요 양당으로부터 차별적인 정치적 대안을 찾고자 했던 유권자들의 끊임없는 실험을 목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과는 실패였다. 다당제의 정착도, 제3당을 통한 국회 내 토론과 합의 문화의 발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당제를 통한 합의제의 발전보다는 여야 대결이 중심인 정당정치의 폐해를 개선하는 것에 민심이 놓여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민심이 비례성 강화를 통해 정책 경쟁의 정치가 발전하는 것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민심은 이미 여러 차례의 선거를 통해 현행 선거제도 아래서도 당선권 내 비례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각 정당 내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순위 경쟁을 경험했다.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갈등을 치유할 수 없다. 더구나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정당의 결정에 불복하는 현실은 새로운 선거제도 아래서도 당선권 내 비례의석에 공천되지 못한 후보가 당의 결정에 불복하는 행태가 반복될 것을 예상하게 한다. 정책 경쟁의 정치를 목표로 한다고 하더라도, 선거제도의 개혁보다는 정당의 조직과 기율의 발전, 정당 내 응집력의 향상과 같은 성숙한 정당의 발전에서 목표 달성의 가능성을 찾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심은 비례제 의석을 확대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비례제 의석을 늘리지 않고서 비례성을 강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행 지역구 의석수를 줄여 비례제 의석으로 전환하거나, 지역구 의석수는 유지한 채 비례제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전자는 국회가, 후자는 국민이 반대했던 방식이다. 특히 국회와 정당에 대해 신뢰가 낮은 민심은 의원 정수의 축소를 주장했었다.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하는 국회와 정당을 만들라는 의미였다.

결국, 현재 선거제도 개혁의 논의는 유권자의 투표를 의석 배분에 잘 반영하는 것에서 민심을 찾고 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 민심의 방점은 유권자의 선호를 정책에 잘 반영하는 것에 놓여 있다. 선거제도 개혁보다 정당 개혁이 선행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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