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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새누리당 인적 청산

입력
2016.1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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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에 적극 협력했던 프랑스 비시 정권(1940~44년)에서 경찰서장을 지낸 모리스 파퐁(1910~2007). 레지스탕스 경력을 내세워 단죄를 피하고 사회당 정부의 장관까지 지낸 그는 1998년 뒤늦게 법정에 섰다. 유대인 1,500여명을 강제수용소에 보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아흔 나이에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르몽드 기자가 한 중학생에게 물었다.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 파퐁을 재판정에 세운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학생은 “인간적으론 안 된 일이지만 역사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라고 답했다.

▦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를 혹독하게 다뤘다. 해방 직후 약식처형(9,000명), 사법숙청(1,500명 처형ㆍ4만명 투옥), 여성부역자 삭발식(2만명)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프랑스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다. 일각에선 관용론을 폈다. 숙청이 또 다른 트라우마를 남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정의의 실현이 관용보다 먼저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알베르 카뮈가 선두에 섰다.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하는가? 누가 진실을 망각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이다.”

▦ 중국에선 외국 침략자에게 협력한 사람을 한간(漢奸)이라 부른다. 청나라 때 중국을 지배하던 만주족과 내통한 한족을 이르던 말에서 유래했다. 청나라 말기와 중일전쟁 때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에 협력한 자도 포함된다. 매국노, 부역자와 비슷한 말이다.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이들을 엄벌했다. 우리나라는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 한국전쟁을 거치며 친일 부역자에 대한 처벌이 흐지부지됐다. 이후 70년간 친일파가 정ㆍ재ㆍ관계와 군부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 ‘보수의 본산’ 새누리당이 쪼개진다. 공화당 출범 이래 53년 만이다. 친박ㆍ비박 모두 개혁을 하겠단다. 책임의 경중은 있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비호해 온 세력이다. 특히 친박은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에 빌붙어 귀 막고, 입 닫고, 함께 권력의 단맛을 누려온 간신배이자 부역자다. 친일과 군사독재의 후계자다. 그들이 ‘혁명적 수준의 혁신’을 말하는 건 민심에 대한 모독이다. 두 세력 모두 국정농단에 대한 참회와 최소한의 인적 청산 노력을 보여 줘야 한다. 단순히 모양만 바꾸는 것은 집권을 위한 사기극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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