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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진 통해 성매매 여성의 삶이 이해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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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진 통해 성매매 여성의 삶이 이해되길”

입력
2016.09.0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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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령 이화여대 교수는 오랫동안 용산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과 친분을 쌓으며 실제로 존재하지만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공간의 역사를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그는 "열린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김애령 이화여대 교수는 오랫동안 용산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과 친분을 쌓으며 실제로 존재하지만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공간의 역사를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그는 "열린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서울 용산역 앞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엮은 책이 최근 출간됐다.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봄날의박씨)라는 이 책은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 모임인 ‘판도라 사진 모임’이 찍은 사진과 막달레나공동체 용감한여성연구소가 쓴 글을 함께 담은 용산 성매매 집결지의 기록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에 참여한 용감한여성연구소의 김애령 이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를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막달레나 공동체’는 1950년대 한국에 파견된 미국인 문애현(진 말로니) 수녀와 용산역 부근 단칸방에서 홀로 성매매 여성 상담을 하던 이옥정 대표가 1985년 용산역 인근에 설립한 성매매 여성들의 쉼터다. 공동체에 참가한 이들의 작은 연구모임에서 출발한 용감한여성연구소는 2004년 개소해 주변화된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활동과 저술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연구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 지역 여성들의 생애사 구술 인터뷰를 모은 책이 ‘붉은 벨벳앨범 속의 여인들’이었어요. 연구보다는 기록을 위한 것이었죠. 앞으로 지속해서 이런 작업을 하자는 뜻에서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김 교수가 만난 이들은 대부분 호객이 주 업무인 50대 이상의 여성들이었다. 용산에서 오랫동안 집결지 여성들과 소통해온 막달레나공동체의 도움으로 ‘일반동네’ 사람들인 연구위원들이 그곳 여성들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 ‘언니’는 그들과 가깝게 지내며 자연스럽게 부르게 된 호칭이다. “처음 만나서 인터뷰했을 땐 좌절도 많이 했어요. 마음의 벽이 높은 분도 있었거든요. 한번은 말을 잘 안 해주던 분과 밤새 소주를 마신 적이 있어요. 별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저희더러 ‘괜찮은 애들’이라고 하시더군요.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벽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사진 작업은 2009년 초 용산 재개발에 따른 철거가 시작되면서 시작됐다. 도시의 역사에서 의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소외된 공간이, 성매매와 직간접적으로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공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사진 기록’을 생각한 것이다. 판도라 사진 모임은 8명으로 시작했다. 김 교수는 “처음부터 사진을 갖고 뭘 할까 생각하진 않았다”며 “연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고 책을 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거나 마음대로 찍으시라고 하면서 카메라를 드렸는데 뜻밖에 언니들이 찍어온 사진들이 무척 독특했다”고 했다.

사진에는 그들의 일상이 담겨있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 집들이에 모인 현관의 신발들, 둘러앉아 화투를 치는 모습, 장독대 등. 외부에 노출하는 걸 꺼릴 만도 하지만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김 교수는 “외부인의 시선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시선이 드러났다”며 “무엇보다 각자 찍어온 사진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2009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웰즐리대에 재직 중이던 쳉실링 홍콩중문대 인류학과 교수의 제안으로 웰즐리대를 비롯한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언니들’에게 사진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은 사진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냐는 질문에 “그저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이해받고 싶다”고 답했단다. 김 교수는 “사진이라는 객관화된 매개체를 공동체적으로 공유하면서 그분들이 스스로와도 화해하고 자기의 과거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사진을 찍으며 사라진 공간과 작별하고 이주해 간 새 공간에 잘 적응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는 매우 특별한 사진집일 수도 있고, 몹시 평범한 책일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동료들도 처음엔 그런 편견이 있었어요. 하지만 편견과는 다른 것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죠. 저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이 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돕고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랍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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